클래식 잡설

절대음악과 표제음악

교클 2021. 10. 23. 2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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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대중음악들은 제목이 존재합니다. 제목이 없는 노래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클래식 음악의 경우는 다릅니다. 클래식 음악은 제목이 붙어있는 곡들도 많지만 명확한 제목이 없이 교향곡 몇 번, 피아노 소나타 몇 번. 이런 식으로 부르는 곡들이 많습니다. 대중음악만 접하다 처음 클래식 음악을 찾아 듣는 사람들이 겪는 어려움 중에 하나가 이런 특정한 제목이 없는 난해한 명칭의 곡들입니다. 교향곡 몇 번 이런 제목만 보고는 이게 어떤 곡인지 도대체 감을 잡을 수가 없죠.

이번 글에서는 이런 어려운 클래식음악의 제목을 구별하는 방법. 그러니까 특정한 제목이 없는 절대음악과 제목이 붙어있는 표제음악이 무엇인지, 그리고 어떤 음악이 표제음악인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참고로 이 표제음악이라는 장르는 기악곡에서만 사용하는 단어입니다. 성악곡의 경우는 절대음악인가 표제음악인가를 따지지 않습니다. 성악곡은 기본적으로 가사라는 스토리가 존재할 수밖에 없는 음악이기 때문에 따지고 보면 모든 성악곡들은 표제음악이기 때문입니다.

 

 

절대음악

절대음악은 순음악 이라고도 부르는데 제목이 없는 음악을 뜻합니다. 위에서 언급한 교향곡 몇 번, 소나타 몇 번 이런 곡들이 절대음악입니다. 절대음악의 감상 포인트는 엄격한 형식의 준수에서 오는 형식미입니다. 표제음악과는 달리 순수한 음악의 아름다움 그 자체만으로 승부를 본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낭만파 이전 시기의 곡들은 거의 전부 절대음악이었고 특히 고전파 시대에 가장 많이 작곡되었습니다.

특정한 제목이 없기 때문에 절대음악은 곡의 형식과 번호로 부릅니다. 거기에다 더 정확하게 부르기 위해 작곡가 이름이나 조성 등을 덧붙여 부르기도 하는데 그 유명한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은 이런 식으로 부르면 베토벤(작곡가) 교향곡(형식) 5(번호) c단조(조성)’이 됩니다.

베토벤-교향곡 제5번 c단조. 카를로스 클라이버 지휘,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연주

 

 

표제음악

이름을 그대로 해석해 보면 표제, 즉 제목이 있는 음악이라는 뜻으로 음악 외적인 이야기(문학이나 그림 등)을 음악적으로 묘사한 음악을 일컫는 단어입니다. 표제음악의 감상 포인트는 이런 음악 외적인 내용을 전혀 다른 장르인 음악으로 얼마나 생생하게 묘사했는가입니다.

하지만 음악적인 묘사에 너무 치중하다 보면 정작 근본이 되는 음악성이 나빠질 수 있습니다. 그렇게 때문에 묘사를 생생하게 하면서도 음악성을 유지하는데 성공한 곡들은 높은 평가를 받습니다.

바로크 시대와 고전파 시대에도 표제음악이 조금 작곡되기는 했지만 본격적으로 이 장르가 확립된 건 낭만파 시대입니다. 낭만파 초기 시절 작곡가인 멘델스존의 서곡들과 베를리오즈의 환상 교향곡이 본격적인 표제음악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으며 낭만파 후기로 갈수록 많은 표제음악들이 작곡되었습니다. 동시에 이전까지 고전음악의 주류였던 절대음악의 작곡비중은 갈수록 줄어들게 되죠.

멘델스존-〈핑갈의 동굴〉서곡. 스코틀랜드에 위치한 해식동 헤브리디스 동굴을 묘사한 음악입니다. 듣고 있으면 파도의 일렁거림과 바닷새의 움직임, 파도가 동굴에 부딪쳐 나는 울림이 들리는 듯 싶습니다. 멘델스존은 이 곡으로 '음의 풍경화가'라는 별명을 얻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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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점

특정한 제목으로 부르는 클래식 곡들 모두가 표제음악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표제음악인가 순음악인가의 여부는 단순히 제목이 붙어있는지의 여부가 아니라 음악 외적인 내용을 음악으로 표현하였는가 여부입니다.

예를 들면 베토벤의 교향곡 5번과 6번은 각각 운명전원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는 곡입니다. 두 곡 다 제목이 붙어있지만 운명은 절대음악, 전원은 표제음악입니다.

베토벤의 5번 교향곡은 형식을 분석해 보면 모범적인 절대음악입니다. 그리고 이 운명이라는 제목은 애초에 베토벤이 붙인 제목도 아닙니다.

반면 전원 교향곡은 각 악장마다 작곡가 본인이 표제를 붙이고 그 내용을 음악을 이용해 구체적으로 묘사했기 때문에 표제음악으로 볼 수 있습니다. 운명 교향곡과 동시에 작곡되었던 이 곡은 표제음악의 선구자로 부르는 곡입니다. (사실 아직 표제음악이라는 장르가 정착되지 않았던 고전파 시기인지라 베토벤 본인은 표제에 너무 얽매이는 걸 원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하이든의 경우에도 그의 교향곡들 중에 제목이 붙어있는 곡들이 상당히 많지만 하이든의 교향곡들 중에 작곡가 본인이 붙인 제목은 하나도 없으며 따라서 그의 교향곡 104개는 전부 절대음악입니다.

 

이렇게 작곡가의 의도와 관련 없이 붙은 제목들은 장점이 되기도 하고 단점이 되기도 합니다. 이런 제목들은 주로 작곡가의 음악을 출판하던 출판사에서 작품의 흥행을 위해 임의로 붙이거나 작품이 인기를 끌면서 대중들 사이에서 작품의 별칭으로 자리 잡은 사례가 대부분입니다. 아무래도 부르기 어려운 교향곡 제5c단조보다는 운명이라는 임펙트 있는 제목이 훨씬 기억에 잘 남으니 말입니다.

이렇게 붙여진 제목은 작품에 대한 접근성을 낮춰주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잘 쓰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작곡가의 의도와 무관한 그 표제에 얽매여 단편적으로만 이해하게 될 수가 있습니다.

따라서 제목이 붙은 절대음악의 경우에는 처음에는 제목에 관심을 가져서 찾아 듣다 익숙해지면 제목을 의식하지 말고 형식에 집중하여 순수한 음악적 아름다움에 집중하여 감상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독일의 음반회사 도이치 그라모폰에서 발매한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과 7번 교향곡 음반입니다. 보다시피 딱히 부제가 적혀있지 않습니다.

 

 

교과서에 나오는 주요 표제음악들

 

바로크 시대: 비발디-바이올린 협주곡 Op.8 No.1~4 사계

고전파 시대: 베토벤-교향곡 제6전원

낭만파 시대: 베를리오즈-환상 교향곡, 멘델스존-핑갈의 동굴서곡, 한여름 밤의 꿈모음곡

국민악파: 스메타나-교향시 몰다우, 무소르그스키-전람회의 그림모음곡, 그리그-페르 귄트모음곡, 시벨리우스-교향시 핀란디아, 림스키코르사코프-세헤라자데

·현대음악: 드뷔시-목신의 오후전주곡, 홀스트-행성모음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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