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잡설

지휘봉에 찔려 사망

교클 2021. 3. 19. 0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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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휘봉에 찔려 사망

(부제: 지휘봉과 지휘의 역사)

 

사람이 어떻게 지휘봉에 찔려서 죽나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으실 겁니다.

그 문제의 지휘자의 이름은 장 바티스트 륄리(1632 ~ 1687)로 루이 14세가 재위하던 시절인 초기 바로크 시대 프랑스 작곡가입니다.

(참고로 이 분을 젓가락 행진곡의 작곡가로 알고 있는 분들이 많은데 그 륄리는 이 륄리(Jean Baptiste Lully)가 아니라 Arthur de Lulli라는 19세기 후반의 영국 소녀입니다. 젓가락 행진곡을 들어보면 알겠지만 륄리의 바로크 음악과는 매우매우매우 차이 나는 곡입니다. 젓가락 행진곡은 음악 사조를 언급하는 것 자체가 의미 없는 소곡이지만 굳이 따지면 후기낭만주의 악곡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장 바티스트 륄리)

 

륄리는 기록으로 남아있는 최초의 지휘자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 시대의 지휘봉은 우리가 생각하는 그 지휘봉이 아니었습니다.

사람 키만한 크기의 막대기를 가지고 땅을 쿵쿵 치면서 박자를 치는게 당시의 지휘법이었습니다(사실상 인간 메트로놈...)

 

(륄리의 투르크 의례를 위한 행진곡. 그 당시의 지휘를 고증한 연주회입니다. 커다란 막대로 바닥을 쿵 쿵 거리면서 지휘를 하네요.)

 

당연히 이런 지휘법은 힘도 많이 드는데다 음악 감상 중에 쿵쿵 소리가 섞여 들리니 감상에도 방해가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가장 심각했던 점이 자칫하면 저러다 자기 발을 찍을 위험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딱딱하고 큰 막대기를 있는 힘껏 내리치니 그 소리가 멀리까지도 들렸다”

오페라도 작곡할 만큼 음악에 조예가 깊던 철학자 루소의 회상입니다.

그림(Grimm)이라는 사람은 한술 더 떠서 “지휘자가 막대기를 내리치려 하길래 고장난 바이올린을 박살내려고 하는 줄 알았다. 그리고 나무 깨지는 소리가 났는데, 나는 그의 팔이 부러진 줄 알고 깜짝 놀랐다. 그의 팔힘이 얼마나 센지 무서울 정도였다. 그리고 박자가 아주 크게 들렸는데도 연주가 맞아 들어간 적이 없었다.” 라는 독설을 날렸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결국 사달이 일어나고 맙니다.

 

사건은 1687년 1월 일어났습니다.

그날도 역시 열정적인 지휘를 하고 있던 륄리. 음악이 점점 고조되어 가고 관중들과 연주자들 모두 음악에 빠져들던 그 순간 갑자기 비명소리가 들립니다.

지휘자가 음악에 너무 심취한 나머지 그만 지휘봉으로 자신의 발가락을 찍어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영화에서 묘사된 륄리의 사고 장면. 약혐 주의)

 

이후 륄리는 결국 이 사고로 생긴 상처로 인해 죽고 맙니다. 저런 지휘봉에 발가락이 찔렸으니 살짝 납득이 가지만 그래도 발가락 찍힌 걸로 어떻게 사람이 죽나 싶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당시 륄리의 나이가 이미 55세였고 당시에는 지금처럼 항생제는커녕 세균의 존재도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가벼운 상처가 세균 감염으로 심각해지는 상황이 적지 않았습니다. 거기에 화장실도 없어서 길바닥에 똥이 굴러다니던 베르사유 궁전의 더러운 위생상태도 한 몫 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의사는 살고 싶으면 발가락을 절단해야 한다고 했지만 궁정 무용가이기도 했던 륄리는 단호히 거부합니다. 결국 상처가 패혈증으로 진행되어 목숨을 읽고 맙니다. 이는 보통 음악가들의 죽음을 언급할 때 가장 황당한 죽음으로 언급되는 사례입니다.;;

 

...사실 저 당시 오케스트라의 인원은 열댓명 정도로 그리 많지 않았고 그 정도 수준이면 평소 합주 연습을 충분히 한 후 건반악기 연주자나 악장(콘서트마스터. 바이올린 파트 수석연주자)이 몸으로 리듬을 타는 식으로 단원들의 지휘를 대신할 수 있는 수준입니다. 륄리의 사망 이후 바로크 시대 후기까지는 그런 식으로 지휘를 했죠.

 

(바흐의 관현악 모음곡 2번 중 바디네리. 오케스트라가 지휘자 없이 연주합니다.)

 

 

하지만 이후 하이든 모차르트를 거쳐 베토벤 시대까지 왔을 때는 단원의 수가 수십명씩 늘어나게 되었고 더 이상 단원들의 호흡만으로 합을 맞추는 게 힘들어지면서 다시 지휘자가 등장했고 지휘봉 역시 다시 쓰기 시작합니다. 다만 이때부터는 바닥을 두들기는 지휘봉을 쓰지는 않았습니다.

 

베토벤 같은 경우 종이를 둘둘 만 두루마기 지휘봉을 사용했다고 하며 초기 낭만주의 시대의 카를 마리아 폰 베버가 우리가 아는 현대적인 모습의 지휘봉(가느다란 막대기)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최종적으로 현대에 쓰는 것과 같은 지휘봉을 대세로 만든 사람은 다이아수저 작곡가 멘델스존입니다. 그는 상아에 금도금을 한 초럭셔리 지휘봉으로 멋진 곡을 지휘하며 음악성(과 재력)을 자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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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위에 언급된 지휘자들은 사실 전부 작곡가로 더욱 잘 알려진 사람들입니다. 그 당시에는 지금처럼 예전 작곡가들의 곡을 연주하는 것 보다는 당시에 새로 만들어진 음악을 주로 연주했고 그래서 작곡가들이 주로 자신의 곡을 지휘하곤 했습니다. 그러다 후기 낭만주의 시대에 들어서면서 과거 명곡들을 연주하는 일이 늘어나고 지휘와 작곡이 분업화되기 시작하면서 전업 지휘자가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음악 역사에 기록된 최초의 전업 지휘자는 한스 폰 뷜로라는 분입니다. 이 분은 그 유명한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초대 지휘자로 이분이 훌륭히 조련시킨 끝에 세계 최고의 관현악단으로 성장합니다.

 

 

(최초의 전업 지휘자이자 바그너와의 '잘못된 만남' 으로 잘 알려진 한스 폰 뷜로)

 

지휘봉을 쓰지 않는 사례

위에서 지휘봉의 역사에 대해 글을 썼는데 사실 모든 지휘자가 지휘봉을 쓰는 것은 아닙니다. 합창단을 지휘할 때는 오케스트라와는 반대로 맨손 지휘가 국룰이고 오히려 지휘봉을 쓰는 게 비주류입니다.

 

(합창곡 아름다운 나라. 수백명의 대형 합창단을 맨손으로 지휘합니다. 물론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이 같이 공연할 때는 대부분 지휘봉을 사용합니다.)

 

하지만 오케스트라 지휘를 할 때도 지휘봉 없이 맨손으로 지휘하는 유명 지휘자가 몇 분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레오폴드 스토코프스키, 피에르 불레즈, 쿠르트 마주어 등이 있습니다.

 

(바흐의 토카타와 푸가 관현악 편곡. 스토코프스키 지휘)

 

이쑤시개(?!?)

이쑤시개를 지휘봉으로 사용하는 지휘자도 있습니다. 발레리 게르기예프라는 분인데 지휘 실력도 매우 뛰어나지만 이 이쑤시개 지휘로도 유명합니다.

 

(글린카의 루슬란과 루드밀라 서곡. 오른손에 주목을....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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