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잡설

(월클 작곡가에게만 적용되는) 9번 교향곡의 저주

교클 2021. 3. 2. 0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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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클 작곡가에게만 적용되는) 9번 교향곡의 저주

 

클래식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유령처럼 떠돌아다니는 괴담이 하나 있습니다.

작곡가들이 9번 교향곡을 작곡하면 더 이상 교향곡을 작곡하지 못하고 죽어버린다는 9번 교향곡의 저주가 그것입니다.

 

이 저주를 내린(?) 사람은 악성루트비히 반 베토벤입니다.

 

초기 고전파 시대에 세상에 처음 등장한 교향곡은 하이든과 모차르트를 거치며 완전히 확립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교향곡은 금방금방 작곡해서 한번 연주하고 치우는 간단한 관현악곡이었습니다. 하이든은 77세의 인생동안 104개의 교향곡을 작곡했고 모차르트는 36살의 짧은 생애에 41개의 곡을 작곡했습니다. (정식 번호 붙은 곡 기준. 이후 발견된 곡들이 몇 개 더 있습니다.)

 

하지만 베토벤은 이런 귀족들의 여흥용 음악인 교향곡을 작곡가의 각고의 노력 끝에 완성하는 심오한 명작으로 재탄생시켰습니다. 이렇게 되니 예전처럼 금방금방 작곡하고 한번 소비하고 끝나는 식의 양산은 더 이상 불가능했고 천하의 베토벤도 56세 일생동안 9곡밖에 작곡하지 못했습니다. 고로 9번 교향곡을 작곡하고 나서 죽는 이유는 사실상 이런 대작을 9개나 작곡하면 죽을 나이가 다가온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 유명한 베토벤의 마지막 교향곡 합창은 길이가 1시간을 넘어가는데다 교향곡에 최초로 합창을 집어넣는 시도까지 했습니다. 하이든, 모차르트까지만 해도 길이가 30분이 될까 말까 했는데 베토벤 마지막 교향곡에 가서는 이만큼 스케일이 커진 겁니다. (애초에 교향곡의 정의가 관현악단이 연주하는 소나타입니다. 교향곡에 합창이 들어간 시점에서 사실상 교향곡 = 작곡가가 자신의 모든 걸 쏟아 넣은 곡으로 바뀐 수준...)

 

아무튼 베토벤이 9번 교향곡을 작곡하고 죽은 이후 9번 교향곡을 작곡한 작곡가들이 전부 죽음을 맞이하는 일이 일어납니다. 그 사례들을 하나하나 소개하겠습니다.

본론 전에 참고로 말하자면 9번 교향곡이 실제로는 작곡가가 쓴 9번째 교향곡이 아닌 사례도 많습니다. 그 이유도 글에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저주의 창시자 베토벤에 이은 2번 타자는 슈베르트입니다.

그는 9번 교향곡 그레이트를 작곡한 후 31살이라는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굉장히 이른 나이에 죽었기 때문에 일반적인 삶을 살았다면 훨씬 많은 교향곡을 작곡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네요.

그의 교향곡에서 특이한 점은 7번과 8번 교향곡입니다.

7번 교향곡은...없습니다. 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슈베르트가 번호는 붙여놨는데 실제로는 기초 작업만 해놓고 만들지 않았습니다. (슈베르트는 유독 이런 사례가 많습니다. 상당히 산만한 성격이 아니었을까 추측됩니다;;)

8번 교향곡은 미완성 교향곡으로 많이 알려져 있는 곡입니다.

이 곡은 2악장까지는 완성했는데 끈기 없는 슈베르트는 또 작곡하다 때려치웁니다...

3악장은 초반 8마디까지만 작곡한 후 이후로는 스케치만 불완전하게 남아있고 4악장은 흔적도 없습니다.

일반적으로 작곡가의 미완성곡은 작곡가가 쓰는 도중에 죽어버려서 미완성으로 남은 사례가 많은데 이 곡은 그냥 쓰다 말았던 것이 특이한 점입니다. 그래서 미완성 교향곡을 슈베르트의 마지막 교향곡으로 알고 있는 사람이 많은데 절대 아닙니다. 9번 교향곡은 아주 멀쩡히 남아있습니다.;;

 

(니콜라스 아르농쿠르의 슈베르트 교향곡 전집. 7번 그런 건 없습니다. 음반에 따라 7번을 제외시키고 8-9번 교향곡을 7-8번으로 옮겨놓은 사례도 존재합니다.)


 

슈베르트가 죽은 후로는 오랫동안 9번 근처에 가는 사람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슈만은 4번 교향곡을 작곡한 후에 정신병을 얻어 젊은 나이에 세상을 뜨고, 멘델스존은 5번을 작곡하고 역시 요절, 브람스는 베토벤을 너무 의식해 베토벤 급이 되는 교향곡을 만들려 하다 평생 4곡밖에 작곡하지 못했습니다. 바그너는 젊은 시절 교향곡 1개를 작곡한 후에 오페라로 방향을 틀어버립니다. 교향곡은 베토벤 이후로 끝났다면서... 그 밖에도 생상스는 3, 차이코프스키는 6번까지 작곡하고 죽고 맙니다.

 

 

그러던 어느 날 오랜만에 9번에 도전하는 작곡가가 나타났습니다.

3번 타자는 안톤 브루크너. 그는 젊을 때는 교사와 오르간 연주자로 일하다가 늦은 나이에 본격적으로 작곡을 배워 40세가 다되어서 첫 교향곡을 썼습니다. 하지만 그 후로도 오랫동안 실패만 거듭하다 60대가 다되어 작곡한 7번 교향곡에서 드디어 제대로 된 성공을 맞봅니다. 그야말로 대기만성이라는 표현에 걸맞은 작곡가입니다.

주목할 점은 그는 초창기에 번호를 붙이지 않은 교향곡 2곡을 작곡했다는 겁니다. 이 곡은 아직 작곡을 배우던 시절 연습 겸 해서 작곡한 곡으로 본인은 습작으로 취급하고 정식 작품으로 인정하지 않아서 후대에 임의로 00, 0번으로 통칭합니다. (따지면 실제로 작곡한 곡은 9개를 넘는 셈이지만 이건 9번째 교향곡의 저주가 아니라 ‘9교향곡의 저주입니다)

그는 이후 9번을 작곡하던 중 4악장을 완성하지 못하고 죽고 맙니다. 브루크너가 교향곡을 작곡할 때 보통 2~3년을 걸려 한 곡을 작곡한 것에 비해 이 곡은 무려 10년이라는 세월을 쏟아부었음에도 4악장을 완성하지 못하고 죽은 겁니다. 그만큼 이 작품은 거대한 규모에다 심오한 깊이를 담고 있는 명작입니다.

(여기에도 작은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8번 교향곡의 초연을 부탁받은 지휘자가 수정이 필요할 듯 하다며 초연을 거절하자 귀 얇은 브루크너는 바로 대대적인 수정작업에 들어가는 한편 시키지도 않은 자신의 이전 교향들까지 뜯어고칩니다. 이 과정에서 3년 정도의 시간을 잃었습니다.)

 

(브루크너의 9번 교향곡 2악장. 쥴리니 지휘.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연주)

 

 

4번 타자는 신세계 교향곡으로 유명한 동시기 체코의 국민악파 작곡가 안토닌 드보르작(드보르자크가 정식 표현입니다만 드보르작으로 칭하겠습니다.)

신세계 교향곡은 드보르작의 9번인데 사실 생전에는 9번이 아니라 5번으로 알려졌습니다. 1~4번은 생전에 발표하지 않고 그냥 습작으로 묵혀둔 곡이 사후에 발견되어 수정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1~4번은 사실상 거의 연주되지 않습니다. 현재 그의 교향곡은 7~9번이 자주 연주되고 그 중에서도 9번이 압도적으로 자주 연주됩니다.

 

 

(신세계 교향곡 2악장. 첼리비다케 지휘. 뮌헨 필하모닉 연주. 아재분들은 학창시절 음악시간에 꿈속의 고향이라는 노래를 배우신 적이 있을 겁니다. 그 노래가 이 곡에다 가사를 붙인 곡입니다. 제가 어머니와 함께 외갓집 가는 길에 차에서 이 곡을 들으면 어머니가 “꿈 속에 그려라 그리운 고향~” 하면서 흥얼거리시던 기억이 있습니다.)

 

 

5번 타자는 구스타브 말러입니다.

그는 이 저주에 대해 명시적으로 언급한 기록이 있는 유일한 작곡가입니다. 어찌보면 저주의 진짜 창시자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8천인(千人) 교향곡을 작곡한 후 말러는 불안감에 휩싸이기 시작합니다. 그는 아내 알마 말러에게 보낸 편지에서 어떤 작곡가도 9번 교향곡을 작곡하고 나서 살아남은 적이 없다고 불안해했습니다. 두려움에 떨던 말러는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하나 생각해 내는데 그가 작곡하고 있던 9번째 교향곡에다 9번 번호를 붙이는 대신 대지의 노래라는 제목만 쓴 채 번호를 붙이지 않는 꼼수를 사용합니다.

과연...그는 이 사실상의 9번 교향곡인 대지의 노래를 작곡하고도 멀쩡히 살았습니다. 드디어 저주를 벗어난 말러는 다음 교향곡에 당당하게 9번 번호를 매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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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러는 2년 뒤 10번 교향곡을 작곡하다 죽고 맙니다. 꼼수 부려봤자 저주를 피할 수는 었었습니다(...)

덧붙이자면 유작으로 남은 10번 교향곡은 1악장까지만 작곡이 완료되었고 연주가 되더라도 보통 1악장만 연주합니다.

 

말러의 대지의 노래 중 3악장. Von der Jugend(청춘에 대하여). 테너 김재형, 부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연주. 중국풍의 느낌이 물씬 나는 음악인데 이 곡의 가사가 중국 한시의 번역이라 그렇습니다

 

이후에 한동안 다시 9번 교향곡을 작곡하는 작곡가가 없습니다.

20세기 작곡가 중에 교향곡의 비중이 좀 있는 작곡가들을 보면 시벨리우스는 7(90세가 넘게 살았지만 말년에는 27년 가까이 작곡을 접었습니다. 꾸준히 작곡했으면 돌파를 할 수도 있었겠지만...),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는 2번(과 번호를 붙이지 않은 2곡), 라흐마니노프는 3번까지 작곡했습니다.

말러의 추종자였던 쇤베르크는 말러가 죽은 후 아홉 번째 교향곡을 작곡했다는 것은 곧 죽음과 무척이나 가까워졌다는 뜻이다.”라는 말까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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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저주는 결국 20세기 중반이 되어서 깨지게 됩니다.

그 사람은 바로 소련의 작곡가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

192519세때 대학교 졸업작품으로 만든 첫 교향곡을 시작으로 한차례의 숙청위기, 2차대전 등 여러 사건들을 겪으면서 2차대전이 끝날 무렵 8번 교향곡까지 작곡하게 됩니다.

마침 2차 대전도 소련의 승리로 끝나고 미국과 양대 초강대국의 위치에 올라선 소련은 소비에트 최고의 작곡가의 (대작곡가들의 최고 명곡들로 가득한)9번을 엄청 기대하며 김칫국 한사발을 드링킹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마침내 나온 9번 교향곡은...

전곡의 길이가 겨우 30분밖에 안되는 초심플한 교향곡이었습니다. 물론 쇼스타코비치 특유의 스타일도 잘 살아있는 명작이긴 하지만 30분이라는 길이는 저 옛날 하이든 모차르트의 교향곡 수준입니다. 소련 정부에서 기대한 그런 명곡과는 거리가 먼 곡이었습니다. (예를 들면 쇼스타코비치의 7번 교향곡은 1악장의 길이만 30분입니다...)

 

당연히 뒤통수 맞은 소련 정부는 ㅂㄷㅂㄷ하면서 나중에 이것들 한번 손봐주겠다고 다짐을 합니다.

그리하여 1년뒤 쇼스타코비치에게 고난이 찾아오는데 소련 정부에서 쇼스타코비치를 형식주의자라고 대대적으로 비판을 했던 것입니다. 이 공격은 쇼스타코비치뿐만 아니라 소련의 거의 모든 예술가들이 타겟이 되는데 이로 인해 대부분의 작곡가들이 자아비판을 해야 했고 창작에도 상당한 제약을 받게 됩니다. (만일 여기서 굴하지 않고 기존처럼 순음악적인 곡을 썼다간 비밀경찰이 들이닥쳐 쥐도새도 모르게 실종되었을 겁니다.)

웃긴 것은 쇼스타코비치의 작품이 승전국의 분위기에 걸맞지 않은 가벼운 곡이었다고 까였는데 동료 작곡가 하차투리안이 작곡한 교향곡은 승전 분위기에 맞는 엄청나게 거대한 곡이었습니다. 근데 이 곡은 너무 장황하다는 이유로 까였습니다.;; 즉 소련 정부는 스탈린과 공산당을 찬양하는 곡을 쓰지 않는 모든 작곡가들을 한번 손봐줄 작정이었다는 것.

 

9번 교향곡의 저주(?)로 바람 앞의 촛불과 같은 운명이었던 쇼스타코비치는 이후 스탈린 사후까지 형식주의적인 교향곡은 작곡을 못하고 스탈린과 공산주의를 찬양하는 쓰레기 곡들만 작곡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19533월 다행히 쇼스타코비치보다 먼저 스탈린이 저승으로 간 이후 쇼스타코비치는 10번 교향곡을 엄청난 속도로 작곡해서 그 해 12월에 초연을 합니다. 저주가 깨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이후 쇼스타코비치는 5곡을 더 작곡하여 총 15번 교향곡까지 작곡한 후 세상을 떠납니다.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10번 2악장. 굉장히 강렬한 리듬의 곡입니다. 유튜브에서는 이 곡을 일렉기타로 연주하는 영상도 있더군요)

 

쇼스타코비치 이후로 10번 교향곡 이상을 작곡한 작곡가가 여럿 있었지만 더 이상은 별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현대음악에서는 교향곡은 작곡가의 핵심 장르에서 탈락했을 뿐만 아니라 클래식 업계 자체가 새로운 곡보다 기존의 명작들을 소비하는 걸로 트렌드가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약간은 김빠지는 사실맨 위 제목에도 적어놨는데...사실 클래식 음악 역사상 작곡가는 수천명 이상으로 엄청나게 많고 그 중에서 베토벤 이후로도 9번을 넘은 작곡가가 많습니다. (ex:19세기 작곡가 요아힘 라프) 이 저주는 어디까지나 음악사에서 꽤 중요하게 여겨지는 수십명 정도의 작곡가에 한한 이야기입니다.(대략 교과서에서 이름을 찾아볼 수 있는 수준의 작곡가들과 범위가 비슷하다고 보면 됩니다. 요아힘 라프는 전공서적에서나 이름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보너스 - 한국 작곡가의 경우?: 한국에 서양음악이 들어온 이후 한국에서도 수많은 작곡가들이 나왔습니다. 그 중에 여러분들도 알 법한 유명한 작곡가들 중에 9번 교향곡에 저주에 걸릴 작곡가가 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첫째로 애국가의 작곡가 안익태입니다. 그는 유럽과 미국에서 활동한 최초의 한국인 작곡가입니다. 그의 작품 목록은 체계적으로 정리된 것이 없어서 정확한 사실을 알 수는 없습니다. 그의 대표작 한국 환상곡을 교향곡으로 취급하는 사람도 있긴 합니다.  하지만 이 곡의 형식이 4악장의 교향곡 형식과 비슷하기는 해도 작곡가가 교향곡이라고 이름붙이지 않은 이상 교향곡으로 취급하기는 어려울 듯 싶습니다.

 

둘째로 윤이상입니다. 윤이상은 한국 작곡가들 중에 세계적으로 가장 잘 알려지고 위상이 높은 작곡가인데 그는 5곡의 교향곡을 작곡했습니다. 5곡 이외에도 실내 교향곡이라고 소편성의 교향곡 2곡을 작곡했는데 번호로 보면 5, 개수로 보면 7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느쪽으로 보나 9개에는 미치지 못하는 숫자입니다.

 

셋째로는 아직 현역으로 국제적인 명성을 얻은걸로 유명한(그리고 진중권의 누님으로 더욱 유명한) 진은숙입니다. 그녀는 교향곡을 작곡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아직 살아있는 분이기 때문에 앞날이 어찌될 지는 모르지만 갑자기 작곡성향을 바꿔 교향곡을 9개 넘게 작곡할 가능성은...적지 않을까 싶습니다.

 

하지만 한국 작곡가 중에서도 9번을 돌파한 작곡가가 있습니다.

그분은 나운영이라는 분입니다. 이 분의 이름은 모르는 분이 많을 듯 싶지만 군가 전우(겨례의 늠름한 아들로 태어나~)나 동요 금강산(금강산 찾아가자 일만이천봉~) 은 대부분 아실 겁니다.

나운영은 이런 소품곡들 말고 제대로 된 클래식 곡들도 많이 작곡했는데 교향곡은 9번을 넘어 13번까지 작곡했습니다. 다만 이 분의 교향곡이 음반으로 발매되지도 않았고 연주되는 경우도 많지 않기 때문에...ㅠㅠ

 

(나운영의 교향곡 제8번. 유튜브에서는 1번과 8번 교향곡의 연주만 찾을 수가 있습니다. 1번은 그다지 인상적이지 않았고 8번은 쇼스타코비치 느낌도 나는게 제법 괜찮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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