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잡설

연주회의 불문율

교클 2021. 2. 28.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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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문율: 법률 문서의 형식을 갖추지 않은 법.(네이버 국어사전)

 

클래식 음악의 역사는 수백년이 넘었기 때문에 오랜 새월을 거치며 여러 가지 룰이 만들어 졌습니다. 때문에 적혀있지는 않지만 오랫동안 지켜지고 있는 불문율이 여러 가지 있습니다. 그 중에서 제법 유명한 것들을 소개해 보겠습니다. 혹시 여기에 나오지 않은 것들은 댓글 부탁드립니다.

 

 

1.빈 필하모닉 신년음악회에의 라데츠키 행진곡

이 곡은 요한 슈트라우스 1세가 오스트리아의 라데츠기 장군의 승리를 기념하여 만든 곡으로 왈츠의 아버지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지만 정작 왈츠곡은 아들에게 묻혀버린 요한 슈트라우스 1세의 대표작입니다. 이 곡의 멜로디는 한번쯤은 다들 들어봤을 겁니다.

이 곡은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신년음악회에서 항상 마지막을 장식하는 앵콜곡으로 공식 프로그램에는 없지만 실질적으로는 신년음악회를 상징하는 가장 유명한 곡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유명한 것은 신년음악회에서 이 곡을 연주할 때는 박자에 맞춰서 관객들이 같이 박수를 치는 것입니다. 박수 치는 타이밍도 법칙이 있는 엄숙한 연주회장에서는 굉장히 이례적인 사례죠. 이 불문율에 영향을 받았는지 현재는 다른 콘서트에서도 이 곡이 앵콜로 나오면 다들 리듬에 맞춰 박수를 칩니다.ㅎㅎ

하지만 이 전통이 딱 두 번 지켜지지 않았던 적이 있었는데 2005년 신년음악회 며칠전 동남아 대지진이 터지는 바람에 추모의 의미로 라데츠키 행진곡을 목록에서 제외시킨 적이 있습니다. 다른 한번은...마지막에 설명하겠습니다.

 

(1987년 신년음악회. 카라얀 지휘. 항상 눈 지그시 감은 채 근엄한 사진만 찍던 카라얀이 여기선 꽤나 유쾌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2.연말에 자주 연주되는 곡들

이 곡들은 매년 연말만 되면 이곳저곳에서 공연하는 일이 많은 곡들입니다. 3곡을 소개하겠습니다.

 

<합창 교향곡>은 베토벤의 9번 교향곡으로 베토벤의 최고 역작으로 평가받으며 교향곡에 처음으로 합창을 도입한 걸로도 유명합니다. 베토벤이 쓴 원복악보는 무려 세계기록유산에 등재가 되기도 했습니다.

이 곡이 연말에 자주 연주되는 이유는 4악장 환희의 송가가 평화와 인류애를 노래한 곡이라서 다가오는 새해의 평화를 기원하는 의미로 추측됩니다.

(합창 교향곡 4악장. 번스타인 연주)

 

<메시아>는 헨델의 오라토리오(종교적인 내용을 주제로 만든 극음악)로 예수의 탄생, 고난과 부활을 내용으로 한 곡입니다. 이 곡이 많이 연주되는 이유는 당연히 성탄절... 실제로 메시아는 일반적인 연주회장에서 연주되는 것 못지않게 대형교회에서도 성탄 기념으로 많이 연주가 됩니다. (같은 이유로 부활절 기념으로도 많이 연주됩니다)

 

<호두까기인형>은 차이코프스키가 말년에 작곡한 발레곡인데 차이코프스키의 3대 발레곡 중에 하나로 꼽히는 곡입니다.

이 곡의 배경은 크리스마스 이브로 성탄절 즈음에 자주 연주되는 이유 역시 배경과 맞는 시기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대구시향 2020 송년음악회 합창교향곡 포스터. 당연히(?) 올해는 취소되었습니다ㅠ)

 

 

2-1. 할렐루야 기립

위에서 설명한 헨델의 메시아를 연주할 때는 아주 유명한 전통이 있습니다

그 유명한 메시아 2부의 마지막곡 <할렐루야>가 연주될 때는 관객들이 모두 기립하여 감상을 합니다.

 

(예시. 곡이 시작하면 관중들이 하나 둘 씩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이 전통은 아주 오래된 불문율로 무려 수백년을 이어져 온 전통입니다.

가장 유명한 이야기로 이 곡의 런던 초연 시 참석했던 국왕 조지2세가 이 곡이 연주될 때 감동받아 자기도 모르게 벌떡 일어났고 왕이 일어나 있는데 백성들이 앉아 있을 수가 없기 때문에 관객들도 덩달아 다 일어나게 되었던게 전통이 되어 지금까지 이어져 온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상당히 그럴 듯 해 보이는 이 유명한 일화도 사실 그 당시 국왕이 참석했다는 기록이 없기 때문에 진짜인지 알 수는 없습니다. 확실한 건 이 기립 전통은 아주 오래전부터 쭉 이어져 온 유서깊은 전통이라는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공연장에 가서 이 곡을 들을 때 일어나지 않아도 아무 문제는 없습니다. 다만 본인의 앞뒤좌우 관객들 모두 일어나 있는 상황에서도 자신의 신념을 지키는 게 쉽지는 않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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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악장 간 박수는 금지

클래식 연주장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이 어려워 하는 것 중에 하나가 도대체 박수를 언제 쳐야 하는가입니다.

일단 가장 손쉬운 방법은 남들 칠 때 따라 치면 됩니다.;; 연주회장에 많이 다니는 애호가 분들은 곡이 언제 박수를 쳐야 하는지 알고 있기 때문에 거기 맞춰서 박수를 치는게 가장 편합니다.

보통 교향곡은 한 곡이 4악장으로 이루어져 있고 소나타는 한 곡이 3악장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연주가 한번 마무리 되었다고 곡이 다 끝난게 아니라 악장 하나가 끝났을 뿐입니다. 이걸 3~4번 반복해야 최종적으로 마지막 악장까지 곡이 완전히 끝나죠. 그때 박수를 열렬히 치면 되는데 가장 좋은 타이밍은 지휘자나 연주자가 연주를 끝내고 청중에게 돌아설 때입니다. 굳이 박수를 서두를 필요 없어요ㅋ

오페라의 경우는 반대로 가수가 아리아를 멋지게 부르고 나면 그때마다 박수를 쳐주는게 예절입니다.

이 전통은 의외로 그렇게 오래된 전통은 아닙니다. 19세기까지도 클래식 공연장에서 박수를 치면 안되는 불문율은 없었고 당연히 악장 간에도 박수는 터져나왔습니다. 모차르트나 베토벤이 당대에 연주할 때도 당연히 악장마다 박수가 터져나왔습니다. 이런 전통이 나중에 와서 각 악장 사이에는 긴밀한 연계가 되어있고 악장 사이에 박수를 치면 감상의 흐름이 끊어질 뿐만 아니라 연주자의 긴장도 흐트러진다는 의견이 지지를 얻어 차츰 안치는 방향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런데 이 불문율은 사실 오래된 논쟁거리기도 합니다. 박수치는 것도 눈치봐야 하느냐는 주장에서부터 이러니 클래식이 인기없지(...), 흐름 끊어지는게 문제면 오페라는 왜 아리아 끝날 때마다 박수를 치냐? 등등... 이 이상은 너무 복잡한 문제라 이쯤에서 그만하겠습니다;;

 

(차이코프스키의 비창 교향곡 3악장. 정명훈 지휘-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니 오케스트라. 이곡은 4악장 곡이지만 보다시피 3악장이 끝나면 거의 항상 박수가 터져나옵니다. 워낙 강렬하게 끝나서 꼭 박수를 쳐야 할 거 같은 분위기죠.)

 

 

2020년은 모두가 힘들었겠지만 이쪽 업계 역시 올해는 시련의 해였습니다.

코로나 사태 때문에 공연이란 공연들은 대부분 취소가 되었고 연주자나 기타 공연 관련 사람들은 속수무책으로 고통의 시간을 보내야 했죠. 위에 썼던 불문율도 올해는 모두 해당사항이 없습니다. 국내 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연말 합창 교향곡이나 메시아 공연은 죄다 취소되었고 2021 빈 필하모닉 신년음악회는 취소되지는 않았지만 역대 최초로 무관중 공연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라데츠키 행진곡 역시 박수 소리가 없이 연주되는 상당히 허전한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빈 필 역사상 라데츠키 행진곡의 불문율이 지켜지지 않은 두 번 중에 나머지 하나가 바로 올해 연주였습니다. 2022년 연주회에서는 이 불문율이 꼭 다시 지켜졌으면 좋겠네요.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도 2021년은 모두 코로나 극복하고 좋은 일만 생기기를 기원합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니엘 바렌보임이 지휘하는 2022 빈 필하모닉 신년음악회 라데츠키 행진곡. 작년에는 코로나 때문에 무관중이었지만 올해는 코로나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이 모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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