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인간은 사망합니다. 인간의 수명은 다양하지만 어떤 인간도 결국은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그리고 클래식 작곡가들은 은퇴도 없이 자신의 평생을 작곡 활동에 매진하는 경우가 대다수입니다.
작곡가가 한 곡을 작곡하는데 빠르면 몇 달에서 길면 몇 십 년 까지도 걸리기 때문에 죽음을 목전에 둔 작곡가는 자신의 마지막 작품을 완성하고 죽는 경우도 있지만 안타깝게도 미처 완성하지 못하고 사망하는 경우도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클래식 음악 중에는 그렇게 작곡 도중에 사망하여 미완성으로 남겨진 작품들이 여럿 있는데 이번 글에서는 작곡가의 죽음으로 미완성된 작품들에 대하여 써보겠습니다.
참고로 이 글에서는 작곡가의 ‘사망’으로 인해 미완성된 작품들에 대해서만 언급합니다.
예를 들면 바흐의 ‘푸가의 기법’은 작곡가가 죽어서 미완성된 작품이 아니라 실명으로 인해 미완성된 작품이며 슈베르트의 ‘미완성 교향곡’의 경우 작곡가가 죽기 한참 전에 2악장까지만 작곡하고 손을 놓아서 미완성된 곡이라 작곡가의 죽음과는 큰 관련이 없습니다.
1.모차르트의 레퀴엠(Requiem in d-Moll, KV 626)
아마 이 글에서 언급할 작품들 중 가장 유명할 작품일 것이며 이 곡에 얽힌 이야기도 상당히 유명합니다.
모차르트가 35살이던 1791년, 그는 검은 망토를 두른 수상한 사람에게서 작곡 의뢰를 받습니다.
레퀴엠, 즉 진혼곡의 작곡 의뢰를 받은 것인데 50두카텐이라는 파격적인 금액으로 의뢰를 하였고 선수금으로 그 절반을 주며 부탁했지만 의뢰자가 누구인지 정체를 감추어 알 수 없었습니다. (영화 아마데우스의 영향으로 이 사람을 살리에리로 알고 있는 분들이 많은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여러모로 수상한 의뢰였지만 당시 경제난에 쪼들리던 모차르트에게는 포기하기 너무 아까운 제안이었고 작곡에 착수합니다. (당시 대학교수의 연봉이 10두카텐 수준이었다고 합니다.)
당시 모차르트는 오페라 ‘티토 왕의 자비’와 ‘마술피리’ 작곡으로 바쁜 와중에 의뢰받은 레퀴엠의 작곡도 병행해야 했으며 그는 이 레퀴엠을 자신을 위한 레퀴엠으로 여기며 작곡을 하였는데 공교롭게도 모차르트의 건강도 크게 나빠지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모차르트는 1791년 12월 5일 이 레퀴엠을 완성하지 못하고 숨을 거두고 맙니다. 이후 나머지 남은 부분은 제자였던 쥐스마이어가 담당하게 됩니다.
레퀴엠에서 모차르트가 작곡한 부분은 흔히 전체 곡의 절반을 조금 넘는 지점에 있는 ‘라크리모사’ 8마디까지로 알려져 있습니다. 다만 정확하게 어디부터 어디까지라고 쉽게 잘라서 말하기는 어려운 게 모차르트가 작곡했다고 알려진 부분에서도 관현악 파트는 미완성하여 쥐스마이어가 손을 댄 부분이 있으며 쥐스마이어가 작곡한 부분도 모차르트 생전에 멜로디나 전개방식 등에서 지침을 지시한 부분이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어찌하여 쥐스마이어는 1792년에 곡을 완성하는데 성공하였습니다.(뒤에 설명할 다른 사례들을 보면 알겠지만 대작곡가의 유작을 의뢰받아 완성하는데 성공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참고로 앞서 말했던 익명의 의뢰자는 살리에리가 아닌 발제크 백작이라는 사람으로 그는 거액의 돈으로 남의 곡을 받아서 자신의 곡인 것 마냥 발표하는 짓을 자주 하였다고 합니다. 이 건의 경우 1791년 1월에 사망한 자신의 아내의 사망 1주년을 기념하는 진혼 미사를 위해 의뢰를 하였습니다.
2.브루크너의 교향곡 제9번(Symphony No.9 in d minor)
오스트리아의 낭만파 작곡가 안톤 브루크너가 마지막으로 작곡한 교향곡입니다.
그는 1887년에 이 교향곡을 작곡을 시작하였습니다. 하지만 죽기 전날까지 교향곡 작곡에 매진했음에도 결국 4악장을 완성하지 못하고 1896년 10월 11일에 죽고 맙니다.
브루크너가 교향곡을 작곡할 때 보통 2~3년을 걸려 한 곡을 작곡한 것에 비해 이 곡은 무려 10년이라는 긴 세월을 쏟아부었음에도 4악장을 완성하지 못하고 죽은 겁니다. 그만큼 이 작품은 거대한 규모에다 심오한 깊이를 담고 있는 명작입니다.
사실 일이 이렇게 된 데에는 사연이 있습니다. 전작인 8번 교향곡의 초연을 부탁받은 지휘자가 곡이 마음에 들지 않아 초연을 거절하자 귀 얇은 브루크너는 바로 대대적인 수정작업에 들어감과 동시에 시키지도 않은 자신의 이전 교향들까지 뜯어고칩니다. 이 과정에서 대략 3년 정도의 시간을 잃었습니다. 만일 이 기간을 온전히 9번 교향곡의 작곡에 쏟아부었다면 완성을 했을까요? 아니면 그럼에도 완성을 하지 못했을까요?
아무튼 완성하지 못하고 남은 4악장은 작곡가가 죽기 전에 자신이 이전에 작곡한 <테 데움>이라는 합창곡으로 대체해 달라는 유언을 남겼습니다. 하지만 이후 여러 작곡가들이 브루크너가 남긴 4악장의 스케치들을 바탕으로 완성을 시도하였고 실제로 이들이 완성한 여러 판본들이 등장하였습니다…만 현실은 이들 완성판은 자주 연주되고 있지 않으며 브루크너가 완성한 1~3악장까지만 연주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비록 4악장을 완성하지 못했지만 이 곡의 완성도는 남은 1~3악장만으로도 완전한 4악장 곡들에 뒤지지 않습니다. 때문에 이 곡은 미완성 교향곡임에도 현재까지 높은 평가와 인기를 자랑하는 브루크너의 대표작으로 남아있습니다.
3.푸치니의 〈투란도트(Turandot)〉
이 작품은 이탈리아의 오페라 작곡가 자코모 푸치니의 마지막 오페라로 3막에 등장하는 아리아 <아무도 잠들지 말라>(흔히 ‘네순 도르마’로 알려진 곡)은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오페라 아리아 중 하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그는 이 작품을 3막 중반까지 작곡하였지만 안타깝게도 1924년에 후두암으로 사망하면서(푸치니는 엄청난 골초였습니다. 금연합시다!) 남은 작품은 여러 작곡가를 전전하다 최종적으로 후배 작곡가 프랑코 알파노가 완성하여 1926년에 첫 공연을 하였습니다. 이 때 아직까지도 회자되는 재미있는 일화 하나가 있습니다.
이 오페라의 첫 공연은 당연히 푸치니의 절친이자 당시 세계 최고의 지휘자였던 아르투로 토스카니니가 지휘하였습니다.
그는 3막에서 류가 숨을 거두는 장면(=푸치니가 생전에 작곡했던 마지막 부분)까지 지휘를 마쳤을 때 관객석으로 돌아보며 “마에스트로가 작곡한 부분은 여기까지입니다.”(“Qui termina la rappresentazione perché a questo punto il Maestro è morto”) 라고 말하고는 무대 뒤로 나가버린 것입니다. (이는 죽은 거장이자 친구에 대한 지휘자의 극진한 예우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열심히 작곡한 알파노의 기분은 썩 좋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물론 다음 공연부터는 정상적으로 알파노의 완성본을 가지고 공연하였고 이 작품은 초연때부터 현재까지 전 세계의 오페라 극장에 단골로 올라오는 인기 오페라가 되었습니다.
4.말러의 교향곡 제10번(Symphony No.10)
오스트리아의 작곡가 구스타브 말러가 작곡을 시도하다 1악장까지만 완성하고 사망하여 미완성으로 남은 작품입니다.
8번 〈천인(千人) 교향곡〉을 작곡한 후 말러는 불안감에 휩싸이기 시작합니다. 그는 아내 알마 말러에게 보낸 편지에서 어떤 작곡가도 9번 교향곡을 작곡하고 나서 살아남은 적이 없다고 불안해했습니다. (일명 ‘9번 교향곡의 저주’)
두려움에 시달리던 말러는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하나 생각해 내는데 그가 작곡하고 있던 9번째 교향곡에 9번 번호를 붙이는 대신 〈대지의 노래〉 라는 제목만 쓴 채 번호를 붙이지 않는 꼼수를 사용합니다.
과연...그는 이 사실상의 9번 교향곡인 대지의 노래를 작곡하고도 멀쩡히 살았습니다. 드디어 저주를 벗어났다고 생각한 말러는 이제 거리낌없이 다음 작품에 9번이라는 번호를 붙입니다.
…하지만 정말 저주에 걸린 걸까요? 그는 1년 후 10번 교향곡을 작곡하다 사망하고 맙니다.
말러의 경우 교향곡 10번의 초안 스케치까지는 5악장으로 완성하였고 오케스트레이션(관현악 편곡 작업)까지 끝낸 총보는 1악장까지만 완성하였습니다.
말러는 이 미완성 10번 교향곡을 파기해달라고 유언으로 남겼지만 실제로 그렇게 되지는 않았으며 이후 여러 작곡가들이 말러가 남긴 부분을 바탕으로 완성을 시도하였고 완성본도 여럿 존재하기는 합니다만 브루크너의 경우와 비슷하게 말러가 완전히 완성하였던 1악장까지만 취급하는 경우가 가장 많습니다.
이 외에도 많은 미완성 작품들이 있지만 흥미로운 이야깃거리는 없기 때문에 다음 곡들부터는 조금 빠르게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5.무소르그스키의 〈호반시나(Хованщина)〉
흔히 ‘호반시치나’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한 이작품은 러시아 5인조의 일원으로 유명한 모데스트 무소르그스키의 미완성 오페라로 그는 생전에 스케지까지는 완성하였지만 오케스트레이션은 거의 손을 못대고 1881년에 간경화(=알콜 중독)으로 사망하였습니다.
오케스트레이션은 같은 러시아 5인조에 속했던 동료 작곡가 림스키-코르사코프가 작업하여 1886년에 첫 공연을 하였고 이후 1959년에 소련의 대표 작곡가 쇼스타코비치가 다시 한 번 작업을 하여 발표했는데 현재는 쇼스타코비치의 판본이 가장 많이 연주되고 있습니다.
6.바르톡의 피아노 협주곡 제3번
헝가리의 작곡가 벨라 바르톡은 이 곡을 거의 완성을 하였지만 3악장 마지막 17마디를 남기고 1945년 사망하였습니다. 이 남은 17마디는 제자 Tibor Serly가 완성하였습니다.
7.베르크 〈룰루(lulu)〉
오스트리아의 현대음악 작곡가 알반 베르크는 1929년에 이 오페라의 작곡을 시작하여 1935년 패혈증으로 갑작스럽게 죽기 전까지 작곡을 하였습니다.
2막까지 완성을 하였고 마지막 3막을 작곡하던 중 사망하여 오랫동안 2막까지만 공연을 하였지만 오스트리아의 작곡가 프리드리히 체르하가 1979년에 완성판을 발표한 이후로는 이 완성본을 자주 연주합니다.
8.쇤베르크 〈모세와 아론(Moses und Aron)〉
오스트리아의 작곡가이자 12음 기법의 창시자인 쇤베르크는 이 오페라를 1930년에 작곡을 시작하여 1932년에 2막까지 완성하였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로는 더이상 진척이 나가지 않았으며 3막의 경우 1951년 죽기 전까지 몇몇 스케치만 남기는 데 그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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