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잡설

베토벤 - 하일리겐슈타트 유서 전문

교클 2023. 7. 17. 0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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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udwig van Beethoven - Heiligenstädter Testament

 

1801~1802년 하일리겐슈타트에 있을 때 작곡한 것으로 추정되는 피아노소나타 제17번 '템페스트'. 예브게니 키신 연주


다들 알다시피 베토벤은 청각장애를 겪었고 결국에는 완전히 귀가 멀었지만 그 상태에서도 엄청난 숫자의 불후의 명작들을 작곡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결코 쉬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19세기 초반의 의학수준으로는 베토벤의 귓병의 원인을 파악하는 것이 불가능했으며 당연히 치료도 불가능했습니다. (아몬드 기름을 귀에 바른다든지, 냉탕에서 목욕을 하는 것과 같은 치료를 받았는데 이런 걸로 귓병이 나아질 리가 없었죠.)
하릴없이 점점 나빠져만 가는 청력에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았던 베토벤은 1802년, 요양차 갔던 오스트리아의 시골 마을 하일리겐슈타트에서 결국 자살을 결심하고 유서를 작성하였습니다.
하지만 베토벤은 결국 마음을 다잡고 다시 돌아와 음악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작곡가 중 하나이자 청각장애를 극복한 인간승리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이 유서는 베토벤 사후 1827년 3월에 비서였던 안톤 쉰들러와 슈테판 폰 브로이닝에 의해 발견되었으며, 그 해 10월에 공개되었습니다. 

 


이 유서는 베토벤의 두 동생이었던 카스파 안톤 카를 판 베토벤(Kaspar Anton Karl van Beethoven)과 니콜라스 요한 판 베토벤(Nicolas Johann van Beethoven)에게 남겼습니다.
다만 실제 베토벤의 유서에 요한의 이름은 공백 처리되어 있습니다. 베토벤의 동생이 두 명이었기 때문에 문맥상 그 공백란이 요한이라고 추측하는 것이죠. 그 이유는 여러 설이 있습니다만 확실한 것은 알 수 없습니다.

 

베토벤이 절망을 극복한 이후 작곡한 교향곡 제3번 '영웅'. 카라얀 지휘, 베를린 필하모닉 연주


유서 전문

내 동생 카를과 (요한)에게. 오! 너희들, 나를 지독한 고집불통으로 여기면서 염세적인 인간으로 치부하고 남들에게도그렇게 떠벌리고 다니는 사람들아! 나에 대한 너희의 그런 잘못된 생각의 숨겨진 진짜 원인을 너희는 모르고 있다. 
오늘날까지 나는 마음과 정신에서 우러나는 선행을 매우 좋아했다. 심지어 선행을 성취하는 것을 내 의무로까지 여겨왔다. 
그러나 한 번 생각해 보아라. 6년 동안 비참했던 내 상황에 대하여! 무능한 의사들 때문에 증상이 자꾸만 나빠져 가는 것도 모른 채 머지않아 회복되리라는 헛된 희망에 2년을 속았다. 그러다가 마침내는 병이 ‘만성’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설령 어느 정도의 회복은 가능했을지라도 완쾌하기까지의 시간은 장담할 수 없었다.

 

사교의 즐거움에도 쉽게 끌릴 만큼 열정적이고 활발한 성질을 타고난 내가 아니었더냐!그런데 이토록 이른 나이에 사람들로부터 멀어져 혼자 외롭게 살아야만 할 형편이다.이 모든 장애를 마음에서 밀쳐내려는 행동도 해보았지만 곧 내 귀가 들리지 않는다는 슬픈 사실만 몇 배나 더 뼈저리게 느껴야 했다. 얼마나 가혹한 삶이냐! 사람들에게 “더 큰소리로 말해 주시오, 소리쳐 달라구요. 나는 귀가 안 들린단 말이오!” 라고 말할 수가 없었다.

아! 다른 누구보다도 온전해야할 청각이, 지난날에는 정상적으로 마음대로 누리던, 아니 전에는 누구보다도 완벽하게 기능했던 그 감각을 잃어가고 있다. 


이러한 사실을 누군가 눈치챌까봐 이제는 다닐 수가 없었다. 도저히 못할 노릇이었지. 너희와 함께 있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데, 그렇지 못한 나의 고독을 이해해다오. 이 불행을 사람들이 멋대로 오해하도록 내버려두는 수밖에 없으니 나로서는 두 배로 고달프구나.

모임에서 사람들과 어울려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 감정을 토론하는 것이 나에게는 허락되지 않는단 말이다. 다만 어쩔 수 없을 때에만 사람들 속으로 들어갈 뿐이고 마치 추방된 인간처럼 살아야 한다. 사람들에게 다가서면 곧 내 귓병이 들통 나지 않을까 하는 무서운 불안이 덮친다. 
지난 반년동안 시골구석에 처박혀 지낸 것도 그 때문이었다. 되도록 청각을 쉬게 하라는 의사의 현명한 권고가 지금의 내 자발적인 의도와 맞아 떨어진 셈이다. 하지만 이따금 사람들의 모임에 끼고 싶은 견딜 수 없는 유혹에 빠지곤 한다. 
내 옆의 모든 사람은 플룻 소리를 듣는데 나에게는 아무소리도 들리지 않고, 누군가는 양치기의 노래 소리를 듣는데 나는 전혀 듣지 못할 때 느끼는 그 큰 굴욕감이란…. 이런 꼴을 자주 당하다 보니 나는 거의 희망을 잃었다. 스스로 목숨을 끊고 싶은 충동까지 일었다.

 

나를 붙잡은 건 오직 ‘예술’이었다.내가 사명을 다하지 못한 채 이 세상을 저버려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이 비참하고 안타까운 삶을 지탱하고 있는 불안정한 육체는, 아주 조그만 변화에도 나를 최선의 상태에서 최악의 상태로 몰아붙이고 있다. 
인내. 내가 인생의 안내자로 삼아야 할 것은 인종이라고 사람들은 말한다. 그리고 나는 그렇게 했다. 참으려는 나의 결심이 오래 지속되기를 바랄뿐이다. 운명의 모진 여신이 마침내 심장의 박동을 멈추게 해 기뻐하는 그 순간까지, 내 상태가 호전되든지 악화되든지 간에 나는 삶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가지고 있다. 28세의 나이에 사색가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 것은 힘든 일이다. 이는 다른 사람의 경우보다 예술가에 있어서는 더하다.

 

신이시여! 당신께서는 나의 마음속을 들여다보고 계시니 이 모든 것을 아실테지요.
마음속에 사람들에 대한 사랑과 선행에 대한 바람으로 가득 차 있음을 말입니다.


아아, 나에 대한 사람들의 행동이 얼마나 옳지 못했는지를 나의 이러한 상황들을 이해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불행한 사람들은 자기와 똑같이 불행했던 한 인간이 온갖 장애에도 불구하고 가치 있는 예술가와 인간의 대열에 끼기 위하여 전력을 다한 것을 보고, 거기에서 새로운 희망을 찾게 될 것이다.

너희들, 내 동생 카를과 (요한)아, 내가 죽었을 때 슈미트 교수가 아직 살아있다면 즉시 교수에게 내 병상기록을 내 이름으로 의뢰해다오, 그 병상 기록에 이 편지를 함께 놓아라. 그러면 내가 죽은 후 세상 사람들과 나 사이에 얼마쯤의 화해가 이루어지겠지. 
또 지금 나는 너희들을 나에 재산-그것을 재산이라고 말할 수 있다면- 상속인으로 정한다. 그것을 둘이서 똑같이 나누어 가져라. 사이좋게 지내고 서로 잘 도와라. 너희들의 거슬렸던 행동은 벌써 오래전에 용서했다. 동생 카를아, 네가 요즘 나에게 보여준 호의에 대해서는 특히 감사를 표한다. 앞으로 너희들이 나보다는 행복하고 마음고생 없이 살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너희들의 아이들에게는 덕성을 가르쳐라. 덕성만이 인간을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다. 결코 돈은 그렇게 할 수 없다. 내 경험으로 말하는 것이다. 비참함 속에서도 나를 지켜주는 것은 내 덕성뿐이었다. 내 목숨을 스스로 끊지 않을 수 있었던 용기는 예술과 덕성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잘 있어라. 서로 사랑해라. 모든 친구, 특히 리히노프스키 공작과 슈미트 교수에게 감사한다.

리히노프스키 공이 너희에게 주신 악기는 너희중 하나가 간직해 주면 기쁘겠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둘 사이에 말다툼이 나서는 안 된다. 돈으로 바꾸는 것이 도움이 된다면 팔아도 좋다.내가 무덤 속에 있으면서도 너희들에게 도움이 된다면 얼마나 행복하겠느냐. 그렇게 될 수 있다면 나는 기꺼운 마음으로 죽음으로 향하겠다. 내 운명이 가혹해서라고 할지라도 예술의 나래를 마음껏 펼쳐 보이기도 전에 죽음이 내게 너무 빨리 왔다고 생각한다. 
좀 더 뒤늦게 내게 왔더라면…. 그러나 일찍 내게 덮쳐도 나는 만족한다. 죽음은 나를 끝없는 고뇌로부터 벗어나게 하리라. 오고 싶으면 언제든지 와라. 나는 태연하게 너를 맞이하리라.


그럼 잘있거라. 내가 죽어도 나를 아주 잊어버리지는 말아라. 살아있는 동안 너희를 많이 생각했고 너희를 행복하게 해주고 싶었다. 그런 내가 죽더라고 결코 잊지는 말아라. 너희에게 부탁할 자격이 내게는 분명히 있다고 본다. 이 소원을 이루어다오.


- 하일리겐슈타트에서, 1802년 10월 6일, 루드비히 반 베토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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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충

내 형제 카를과 (요한)에게, 내가 죽은 후에 읽고 집행할 것

하일리겐슈타트에서, 1802년 10월 10일 

이처럼 아주 침통하게 네게 작별을 고한다. 그래, 바라마지 않던 희망, 적어도 어느 정도까지는 회복되리라는 지금까지 지녀왔던 이 희망을 나는 이제 완전히 포기해야겠다. 

가을 잎이 떨어져서 시들듯이 내 희망도 역시 메말라버렸다. 내가 이곳에 온 것처럼 나는 떠나간다. 황홀한 여름날 나를 자주 들뜨게 하던 그 호기롭던 용기조차 사라져버렸다. 

아, 하느님 제게 한번은 순수한 즐거움으로 가득 찬 날을 보내주십시오. 아주 오래 전부터 진정한 즐거움이 일으키는 마음의 반향은 제게 낯선 것이 되었습니다! 언제입니까, 아 언제입니까, 
아 하느님 제가 다시 자연과 인류의 성전에서 즐거움을 느낄 수 있을까요? 절대 안 된다고요? 안됩니다. 그것은 너무나 가혹합니다!

 

- 루드비히 판 베토벤 

 

하일리겐슈타트 유서 1페이지
하일리겐슈타트 유서 2페이지

 

하일리겐슈타트 유서 3페이지
하일리겐슈타트 유서 4페이지(보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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