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잡설

박수의 타이밍

교클 2025. 2. 28. 2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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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공연장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이 가장 많이 헷갈려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이 박수를 언제 어느 때 쳐야 하는지 입니다.


대중음악 콘서트처럼 곡 하나가 끝났다고 박수를 남발했다가는 주위 사람들의 눈총을 받기 십상이죠.

 

이번 글에서는 클래식 공연장에서 박수를 치는데 조심스러운 이유와 언제 박수를 치면 되는지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함부로 박수를 치면 안되는 이유
클래식 작품들은 한 곡이 여러 개의 악장으로 구성되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클래식을 처음 듣는 사람은 이 악장이 끝났을 때 곡이 끝난 걸로 아는 경우가 많지만 실제로는 아직 곡이 끝난 것이 아닌 것이죠.
클래식 음악들 중에 우리들이 익히 들어본 소나타, 교향곡, 협주곡 등의 이름이 붙은 작품들은 대부분 여러 악장들이 합쳐져 기승전결을 완성시키는 수십 분짜리 대곡들입니다. 각 악장들도 단절된 개별의 곡이 아니라 유기적으로 서로 연결된 것이죠. 따라서 악장이 끝났다고 박수를 치는 건 곡 중간의 흐름을 끊어 다른 사람들의 감상을 방해하는 행동으로 볼 수 있습니다.
심지어 클래식 음악들 중에는 실제로 악장도 끝나지도 않았는데 끝난 것 같은 분위기를 조성하는 곡들이 있습니다.

이런 곡들의 경우 더욱 눈초리를 받게 됩니다.

 

베버-무도에의 권유. 8:27 즈음에 곡이 끝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조금 더 이어집니다. 하지만 거의 모든 실황 연주에서 이 부분에 박수가 나옵니다...

 

 

박수 금지의 역사
이러한 공연장 박수 금지 문화가 처음부터 있던 것은 아닙니다.

클래식 음악의 역사는 수백 년이 넘어가며 과거에는 이러한 규칙들이 정립되지 않았습니다.

19세기까지만 해도 공연장에서 박수 치는 것에 대한 규칙 같은게 정해지지 않았었고 모차르트, 베토벤 같은 대작곡가들의 작품 발표회에서도 박수를 치는데 제한을 받거나 하는 일은 없었습니다.

다만 19세기 초반의 작곡가들도 악장 사이의 박수를 못마땅하게 생각한 것으로 추측할 수 있는 근거들은 있는데 예를 들면 멘델스존의 대표작인 바이올린 협주곡의 경우 1악장이 멋지게 마무리되는가 싶더니 바순 한 대가 연주를 이어가면서 자연스럽게 2악장으로 넘어가도록 구성해 놓았는데 이 곡의 경우 들어보면 아시겠지만 만일 멘델스존이 두 악장이 이어지도록 해놓지 않았으면 분명히 1악장 끝나고 박수가 나왔을 것입니다. (이러한 작곡 기법을 '아타카(attacca)'라고 부릅니다)

비슷한 시기의 작곡가 슈만 역시 악장 간 박수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이었죠. 그래서 그런지 그의 곡들 중에서도 아타카를 사용하여 악장들이 이어지면서 끊임 없이 쭉 진행되는 곡들이 많습니다.(교향곡 4번이나 첼로 협주곡 등...)

공연장에 악장 간 박수 금지 원칙이 정립된 것은 19세기 후반~20세기 초반 정도에 정립되었다고 합니다. 작곡가 리하르트 바그너가 만들었다는 말도 있고 지휘자 빌헬름 푸르트뱅글러가 만들었다는 말도 있는데 정확히 확인되지는 않습니다. 다만 그들이 악장 사이에 박수를 치는 걸 싫어했다는 일화는 존재합니다.

 

멘델스존-바이올린 협주곡 e단조. 13:48 즈음에서 화려하게 마무리되는가 싶더니 바순이 남아서 2악장으로 자연스럽게 넘어갑니다. 만일 바순이 없었다면 이 부분에서 박수가 나오는 경우가 많았을 겁니다.

 

 

공연장 초보자를 위한 박수 타이밍 안내

클래식 음악을 많이 듣고 공연장을 자주 방문한 애호가들이나 음악 전공자들은 언제 박수를 쳐야 하는지를 꿰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곳에 많이 가본 적이 없어서 박수를 언제 쳐야 하는지 눈치만 보고 있는 분들을 위해 정답을 알려드리겠습니다.

바로 연주자가(관현악단 연주의 경우 지휘자가) 연주를 마치고 '청중을 향해 돌아볼 때'가 정답입니다.

연주자는 곡 전체가 아닌 악장이 끝났을 때에는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청중을 향해 돌아보지 않습니다. 곡이 끝났는지 끝나지 않았는지는 무대의 주인공인 연주자가 가장 잘 알고 있겠죠?

 

다만 이렇게 박수를 곡이 완전히 마무리 된 이후 뒤돌아볼때 쳐야 하는 것은 독주회나 오케스트라 공연에만 해당하는 사안입니다.

순수 기악 연주회가 아닌 오페라의 경우에는 가수의 아리아(독창곡)이나 중창 및 합창이 끝날 때마다 박수와 환호를 보내는 게 규칙입니다. 성악가들이 아리아를 끝내주게 잘 불렀다면 길게 박수를 쳐주고 환호를 하는 게 성악가들에 대한 예의죠. 발레 같은 경우에도 무용이 끝났을 때나 발레리나, 발레리노가 고난도의 기술을 성공했을 때 진심으로 우러나오는 박수를 쳐주면 됩니다.

 

그 외에도 정통 클래식 공연보다 조금 자유로운 분위기인 크로스오버 연주회 등의 경우도 박수 치는것에 큰 제한을 두지 않습니다.

이런 공연의 경우 악장 구분이 되어있는 곡을 연주하는 경우가 잘 없기 때문에 애초에 고민할 필요가 없습니다.

 

2017 빈 신년음악회 '라데츠키 행진곡'-구스타보 두다멜 지휘. 빈 신년음악회의 마지막 앵콜곡인 이 곡의 경우 일반적인 클래식 작품들과는 다르게 관객들이 박수를 치면서 연주자들이 함께 즐기는 것이 관례가 된 예외적인 사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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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롭게 박수를 쳐도 된다는 사람들

위에 글을 읽었으면 아시겠지만 박수 금지 규칙이라는 게 의외로 생긴 지 오래된 규칙은 아닙니다.

사실 베토벤이랑 모차르트 등의 작곡가들이 자신의 곡을 처음 발표하던 공연장에서도 청중들은 악장마다 자유롭게 박수를 쳤었죠.

현재는 박수 치는 규칙에 너무 신경을 쓰다 보니 오히려 클래식 공연장의 진입장벽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따라서 자신의 공연에서는 눈치 보지 않고 자연스럽게 박수를 쳐도 된다고 말하는 음악가들도 많아졌습니다.

물론 여전히 곡 중간에 박수가 나오면 불쾌감을 감추지 못하는 연주자들도 많기 때문에 연주자의 스타일을 모른다면 안전하게 연주자가 청중을 향해 돌아섰을 때 큰 박수와 환호를 주는 게 좋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글쓴이의 생각

저는 악장 사이의 박수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 편입니다.

박수라는 행위 그 자체가 실황 공연의 묘미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다만 싫어하는 박수가 있기는 한데 조용히, 차분하게 마무리되는 곡에서 곡이 끝나기가 무섭게 치는 일명 '안다 박수'는 정말 싫어합니다. 모르는 것보다 어설프게 아는 것이 더욱 싫은...

 

차이코프스키-교향곡 제6번 '비창'. 이런 작품의 경우 연주가 끝나고 난 이후의 침묵의 순간까지 음악에 포함된다고 보아야 합니다. 이런 작품들에서 곡이 끝났다고 바로 박수를 치는 짓을 했다가는 두고두고 회자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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