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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잡설

미술과 음악의 만남 : 명화에서 탄생한 선율들

by 교클 2025. 5. 26.

미술은 눈으로 보는 시각예술이며 음악은 귀로 듣는 청각 예술입니다. 둘 다 예술로 취급받지만 둘은 전혀 다른 장르이죠. 그러나 때로는 이 두 감각이 교차하는 순간이 생기기도 합니다.

 

클래식 음악의 세계에서 화가는 작곡가에게 깊은 영감을 주곤 했습니다. 실제로 수많은 작곡가들이 눈에 보이는 예술작품을 음으로 번역하며, 새로운 세계를 창조해냈죠. 이번 글에서는 그런 특별한 클래식 작품들을 통해, 미술과 음악이 교차하는 순간을 함께 감상해보려 합니다.

 


 

1. 무소르그스키의 전람회의 그림

러시아의 국만악파 작곡가이며 '러시아 5인조'의 일원인 모데스트 무소르그스키의 대표작인 전람회의 그림은 미술에 영감을 받아 작곡한 클래식 음악들 중 아마도 가장 유명한 작품일 것입니다.

무소르그스키는 1874년 친분이 깊었던 화가 겸 건축가인 빅토르 하르트만이 갑작스럽게 사망하고 난 후 개최된 유작 전시회에 참석했습니다. 전시회에서 본 하르트만의 작품들에 창작의 영감을 얻은 무소르그스키는 이후 그중에 10개의 작품들을 뽑아 음악을 작곡했습니다. 10개의 작품들을 모아서 출판한 모음곡이 바로 전람회의 그림입니다.

참고글: (https://schoolclassical.tistory.com/24)

 

전람회의 그림은 원래 피아노곡으로 작곡된 곡이었습니다만 곡 특유의 다채로운 표현력에 주목한 많은 작곡가들이 오케스트라 편곡을 시도하였고 그 중 프랑스의 모리스 라벨이 편곡한 버젼이 가장 유명하여 피아노 원곡만큼 자주 연주되고는 합니다.

'키예프의 대문'의 모티브가 된 '키이우 시의 대문' 시안 그림

 

사실 하르트만이라는 미술가가 유명한 화가도 아니었고 이 곡의 모티브가 된 원작 그림들의 완성도도 그렇게 높지는 않습니다. 하르트만의 작품은 친구 무소르그스키의 음악 덕분에 후세에 남겨질 수 있었다고 봐도 무방하죠.

무소르그스키-전람회의 그림 중 10번 곡 '키예프의 대문'. 임윤찬 연주

 

 

 


2. 드뷔시의 <바다>

프랑스의 인상파 작곡가 클로드 드뷔시의 관현악 모음곡 <바다>는 일본의 우키요에(에도 시대 일본에서 유행한 판화 양식) 화가 가쓰시카 호쿠사이의 작품 <가나가와 해안의 높은 파도 아래>라는 작품의 영향을 받아 작곡한 곡입니다.

곡은 3악장으로 되어 있으며 각 악장에는 이러한 부제가 붙어 있습니다.

 1악장-De l'aube à midi sur la mer (바다 위의 새벽부터 한낮까지)

 2악장-Jeux de vagues (물결의 희롱)

 3악장-Dialogue du vent et de la mer (바람과 바다의 대화)

유의해야 할 것은 드뷔시가 호쿠사이의 작품에 영향을 받아 작곡하였지만 그림에 대한 직접적인 묘사를 한 것이 아니라 그림에서 영감을 받은 작곡가가 자신이 머릿속 바다에 대한 '인상'을 바탕으로 작곡한 곡이라는 것입니다.

 

가쓰시카 호쿠사이 <가나가와 해안의 높은 파도 아래>

호쿠사이의 <가나가와 해안의 높은 파도 아래> 19세기 말 유럽에서 유행한 자포니즘의 영향으로 굉장히 유명해진 작품으로 당대 수 많은 예술가에게 영향을 끼친 작품입니다. 현재까지도 일본 그림 중 세계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 중 하나죠.

 

드뷔시-<바다> 3악장 '바람과 바다의 대화'. 정명훈 지휘, 서울시립교향악단 연주

 


 

3. 라흐마니노프의  <죽음의 섬>

러시아 출신의 작곡가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가 작곡한 교향시로 그가 영감을 받은 그림은 스위스의 화가 아르놀트 뵈클린의 그림 <죽음의 섬>입니다.

오랫동안 교향시를 작곡하기 위한 영감을 찾기 위해 노력하던 라흐마니노프는 1907년 5월 프랑스 파리에서 이 작품의 흑백 모사본을 보고는 영감을 받아 1908년에 교향시 한 편을 작곡하는데 그 작폼이 바로 그림과 같은 제목의 <죽음의 섬>이라는 작품입니다.

라흐마니노프는 일평생 우울증과 죽음의 공포에 시달렸었는데 그의 이러한 성향이 그림과 잘 맞아떨어진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곡은 대략 20분 정도 되며 전반적으로 원작 그림의 분위기를 그대로 음악으로 옮긴 듯한 매우 음울한 분위기가 특징입니다.

그런데 사실 라흐마니노프는 이 그림의 흑백본을 보고 깊은 인상을 받아 곡을 작곡했지만 나중에 원본 그림을 직접 보고는 처음부터 원본을 봤다면 곡을 작곡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실망했다고 하며 흑백으로 된 그림을 보는 걸 더 선호한다고 밝혔습니다.

아르놀트 뵈클린 <죽음의 섬>. 해당 그림은 3번째 그림입니다.

 

뵈클린은 이 <죽음의 섬>이라는 작품에 애착을 가졌는지 조금씩 다른 버젼의 <죽음의 섬>을 5점이나 완성하였습니다. 라흐마니노프 외에도 살바도르 달리와 같은 후대의 거장 미술가들도 이 작품의 영감을 받은 그림을 그렸으며 프로이트, 레닌, 히틀러와 같은 당대 유명 인사들도 굉장히 좋아했던 그림입니다. 특히 히틀러는 독일의 총통이 된 이후 그림을 입수하여 자신의 관저에 걸어두기까지 하였죠.

 

라흐마니노프-교향시 <죽음의 섬>. 앤드류 데이비스 지휘, 로열 스톡홀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연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