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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분석/바로크 음악

바흐가 만든 수면을 위한 음악의 진실은? - 〈골드베르크 변주곡〉

by 교클 2026. 1. 31.

Johann Sebastian Bach - Goldberg Variation BWV988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1685-1750)의 동상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대표적인 건반악기 작품인 <골드베르크 변주곡>에는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이 작품이 바로 불면증 치료용으로 작곡되었다는 이야기죠. 아래에서 소개할 유명한 일화는 요한 니콜라우스 포르켈의 바흐 전기에 수록된 글을 바탕으로 알려진 이야기입니다.

드레스덴 주재 러시아 대사였던 카이저링크 백작은 심한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잠들지 못하는 긴 밤 동안, 전속 연주자인 요한 고트리브 골드베르크가 옆방에서 하프시코드(쳄발로)를 연주하게 했습니다.
백작은 바흐에게 "골드베르크가 연주할 수 있는, 수면을 돕거나 기분을 달래줄 곡을 써달라"고 의뢰했고, 바흐는 이 요청을 받아들였고 이윽고 간단한 아리아와 아리아를 바탕으로 30개의 변주가 이어지는 거대한 변주곡을 작곡합니다.
바흐의 음악을 듣고 깊이 감동한 백작은 감사의 표시로 황금 잔에 100루이도르 금화를 가득 채워 선물했다고 합니다.  

이 썰이 사실이라면 바흐는 아마도 일평생 작곡을 하면서 받았던 보수 가운데 압도적으로 큰 금액을 받았을 겁니다.

다만 해당 썰의 경우 신빙성의 의심을 받고 있습니다. 이 곡을 출판한 1742년 당시 골드베르크의 나이가 불과 14살이었던데다(프란츠 리스트 같은 천재가 아닌 이상 이런 대곡을 연주하기엔 아직 어린 나이죠) 이 작품의 출판본 표지에 골드베르크의 이름은 물론 바흐에게 엄청난 거액을 안겨준 작품의 의뢰인 카이저링크 백작에 대한 헌사조차 전혀 없기 때문이죠.

개인적인 생각으로 음악을 좋아했던 카이저링크 백작이 이런 변화무쌍하면서도 완성도 높은 변주곡을 들으면 오던 잠도 깼을거라고 생각합니다.(글쓴이 본인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합리적인 추측)

어찌되었던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바흐의 몇 안되는 변주곡이지만 그럼에도 바흐의 대표적인 건반음악 작품 중 하나로 유명하며 변주곡 역사상 가장 위대한 곡이라는 위상을 가지고 있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곡의 분석

이 곡은 원래 <2단 건반 쳄발로를 위한 아리아와 변주곡>이라는 제목이지만, 현재는 이 곡의 연주자를 맡았(다고 알려져 있)던 골드베르크의 이름을 따서 <골드베르크 변주곡>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원래 제목을 보면 알겠지만 이 작품은 피아노가 아니라 쳄발로, 그 중에서도 2단 건반이 달린 쳄발로를 위한 작품입니다. 바흐는 악보에 각 건반에 한 손씩 사용하여 연주해야 하는 변주곡을 표시해 두었습니다. 변주곡 8, 11, 13, 14, 17, 20, 23, 25, 26, 27, 28은 2단 건반 연주용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변주곡 5, 7, 29는 1단 건반 또는 2단 건반 모두 사용하여 연주할 수 있도록 지정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이 곡을 억지로 피아노로 연주를 하면 손이 꼬이는 부분이 발생하죠. 
하지만 2단 건반 쳄발로라는 악기가 쉽게 접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닌데다 쳄발리스트보다 피아니스트의 숫자가 훨씬 많다는 현실적인 이유로 기교상의 난점을 감수하고 연주하는 피아니스트들이 많습니다.

 

골드베르크 변주곡-14번 변주의 피아노 연주. 보다시피 왼손과 오른손이 서로 간섭이 되는 부분이 빈번하게 등장합니다.

 

골드베르크 변주곡-14번 변주의 하프시코드 연주. 왼손과 오른손이 서로 다른 단의 건반을 사용하기 때문에 피아노와 달리 간섭을 받지 않고 수월하게 연주하는걸 확인할 수 있습니다.

 

곡은 사라방드 형식의 아리아로 시작합니다. 그리고 아리아의 베이스라인을 바탕으로 한 30개의 변주가 연주된 후 마지막으로 다시 아리아로 돌아와 마무리됩니다. 
곡은 그냥 듣기에는 매우 다채로워 보이지만 분석을 해 보면 놀라울만큼 체계적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우선 처음과 끝이 완전히 동일한 아리아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사이의 30개의 변주들을 크게 분석해 보면 1~15번 변주, 16~30번 변주로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16번 변주에는 서곡이라는 부제가 붙어있는 만큼 골드베르크 변주곡의 전환점이 되는 부분이라고 볼 수 있죠. 또한 아리아와 30개의 변주들 역시 A-B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1변주부터 3으로 나누었을 때 나머지가 1인 변주들(1,4,7,10 등)은 주로 바로크 춤곡을 중심으로 한 다양한 양식의 곡들로 되어있으며 그 다음에 등장하는 변주들(2,5,8,11 등)은 흔히 아라베스크라고 부르는 화려하고 기교적인 (피아니스트의 손을 꼬이게 만드는) 변주들입니다.  다음으로 등장하는, 3의 배수에 해당하는 변주들(3,6,9,12...)은 카논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카논들의 경우 1도 카논의 3번 변주부터 2도 카논의 6번 변주, 3도 카논의 9번 변주, 이런 식으로 등장할 때마다 1도씩 상승하여 최종적으로 10도 카논의 30번 변주까지 등장…하지는 않고 9도 카논의 27번 변주까지 등장합니다. 이 30번 변주에 대해서는 아래에서 조금 더 설명하겠습니다. 

 

그리하여 '춤곡+아라베스크+카논' 이 3개의 작은 묶음이 총 10번 반복되며 30개의 변주가 진행이 되는 것이죠.


곡의 변주는 바로크 당대의 일반적인 변주곡들처럼 멜로디 라인을 바탕으로 만들어지지 않았으며 대신 베이스라인을 바탕으로 변주를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얼핏 들으면 원 멜로디의 형태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주제를 바탕이 되었다는 느낌은 분명히 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전문가들 중에는 이 작품을 파사칼리아로 분류하는 사람도 존재합니다.
곡의 조성은 G단조인 15번, 21번 25번을 제외한 모든 변주들이 G장조입니다(아리아 포함).

 

골드베르크 변주곡 - 안드레아스 슈타이어 쳄발로 연주

 

 

더보기
  • Aria,  3/4박자, 작품의 주제로서 사라방드 형식이며 장식음을 사용. 주요 선율은 1725년 "안나 막달레나 바흐를 위한 클라비어 소곡집 2권"에도 등장함.
  • Variation 1, 제1변주부터 제4변주까지는 1단 건반으로 연주.  2성부로 구성되며 전주곡 형식.
  • Variation 2, 2/4박자, 3성부로 구성되었으며 2성부의 주제 선율이 포함.
  • Variation 3, 12/8박자, 카논 형식으로 3성부로 구성.
  • Variation 4, 3/8박자, 주제 동기를 다시 사용하며 기본적인 선율은 베이스 영역에서 나타남.
  • Variation 5, 3/4박자, 1단 혹은 2단 건반을 사용한 음역으로 진행.
  • Variation 6, 3/8박자, 1단 건반으로 2도의 카논 형식. 주제의 재현은 1마디 늦게 시작함. 기본적인 선율은 상성부에서 진행.
  • Variation 7, 6/8박자, 1단 혹은 2단 건반으로 시작되는 시칠리아노 형식의 곡.
  • Variation 8, 3/4박자, 2단 건반으로 진행하기 때문에 현재의 피아노 연주로는 곤란함. 2성부로 구성된 토카타 형식의 곡.
  • Variation 9, 4/4박자, 3도 카논 형식으로 1단 건반으로 연주. 3성부 중에서 2성부는 카논 형식으로 베이스 영역은 자유대위법으로 진행.
  • Variation 10, 2/2박자, 4성부의 푸게타 형식으로 1단 건반으로 진행함. 주제의 기본 선율로 진행.
  • Variation 11, 12/16박자, 2단 건반을 위한 토카타 형식의 곡.
  • Variation 12, 3/4박자, 4도 카논 형식이며 주제가 다시 등장.
  • Variation 13, 3/4박자, 2단 건반 연주로 진행. 현악기 형식의 선율로 이어짐.
  • Variation 14, 3/4박자, 2단 건반용으로 진행. 전주곡이나 토카타 형식의 곡.
  • Variation 15, g단조, 2/4박자, 1단 건반용으로 5도 카논 형식이며 속도는 안단테로 지정됨. 이 곡을 마지막으로 전곡의 전반부가 끝남.
  • Variation 16, 전반부는 2/2박자, 후반부는 3/8박자로 진행함. 서곡 형식으로 진행하며 프랑스 서곡 형식인 느리게 - 빠르게 - 느리게에서 마지막 느리게 부분이 생략된 구성. 전반부는 점리듬으로 구성된 안단테 빠르기의 곡으로 2성부 프렐류드 형식이며 후반부는 알레그로 빠르기의 3성부 푸게타 형식.
  • Variation 17, 3/4박자, 2단 건반용으로 2성부 토카타 형식의 곡.
  • Variation 18, 2/2박자, 1단 건반용으로 6도 카논 형식. 베이스 영역은 자유 대위법으로 진행하며 주제의 기본 선율은 위쪽 2성부로 진행.
  • Variation 19, 3/8박자, 1단 건반을 위한 곡으로 춤곡 형식이며 3성부로 구성되었으며 자유로운 대위법으로 진행.
  • Variation 20, 3/4박자, 2단 건반용으로 진행.
  • Variation 21, g단조, 4/4박자, 7도 카논 형식으로 반음계적인 형식으로 진행.
  • Variation 22, 2/2박자, 푸가 형식으로 화성적인 진행으로 연주.
  • Variation 23, 3/4박자, 주제를 다시 사용하는 대위법으로, 2단 건반용으로 작곡.
  • Variation 24, 9/8박자, 8도 카논으로 1단 건반용으로 작곡.
  • Variation 25, g단조, 3/4박자, 아다지오 빠르기로 진행하며 2단 건반용으로 작곡되었으며 반음계적으로 진행. 초창기 바흐 골드베르크 연주의 권위자였던 완다 란도프스카는 이 변주에 검은 진주(Black Pearl)라는 별칭을 붙이기도 함.
  • Variation 26, 18/16박자와 3/4박자가 대조적으로 진행함. 전주곡 형식의 곡.
  • Variation 27, 6/8박자, 2단 건반용으로 구성되었으며 9도 카논 형식임. 카논 부분만 2성부로 구성.
  • Variation 28, 3/4박자, 2단 건반용으로 작곡됨. 트릴이 중요하게 사용.
  • Variation 29, 3/4박자, 1단 또는 2단 건반을 위한 곡.
  • Variation 30, 4/4박자, 1단 건반용으로 구성. 아래에 자세히 설명

 

30번 변주는 위에서 말했듯이 원래대로면 이전의 패턴대로 10도 카논이 등장해야 하지만 바흐는 그 대신 당시 유행하던 민요들을 결합한 ‘쿼드리벳(quodlubet, 자유롭게라는 뜻)’을 집어넣습니다. “나는 너무 오랫동안 당신과 떨어져 있었어요”, ”양배추와 순무가 나를 멀리 쫓아버렸네" 같은 노래들을 섞어 넣었는데, 이는 형식적으로 봤을 때 29번 변주까지 치밀하게 쌓아올린 견고한 형식을 무너뜨림에서 오는 카타르시스를 감상자에게 선사하며 동시에 대작곡가의 인간적인 면모가 드러나는 순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30번 변주가 마무리되면 '아리아 다 카포'라는 지시어가 나오는데 이는 맨 처음의 아리아로 돌아가라는 의미로 곡은 아리아를 다시 한 번 연주한 다음에 완전히 마무리됩니다. 맨 처음에 들었던 아리아와 음표 하나조차 다르지 않지만 감상자가 받는 느낌은 처음의 아리아와는 완전히 다를 것입니다.

 


이렇듯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바늘 하나 들어갈 틈이 안 느껴질 만큼 매우 치밀하고 논리적으로 작곡된 견고한 성과 같은 작품입니다. 하지만 이런 치밀한 설계가 청자들이 감상을 전혀 방해하지 않죠. 몇 번째 변주에서 몇 도 카논이 등장한다 같은 사전 정보는 전혀 신경쓰지 않고도 곡을 즐기는 데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꾸준하게 유지되는 베이스라인은 끊임없이 바뀌는 멜로디 라인 속에서도 길을 잃지 않고 중심을 잡아주는 역할을 하며 마지막에 등장하는 쿼드리벳은 지금까지의 팽팽한 긴장감을 무너뜨리며 '위대한 거장의 작품'에서 ‘모두의 음악'으로 내려옵니다. 모든 변주를 들은 후 맨처음 등장했던 아리아가 다시 나오는 장면에서는 긴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포근함까지 느껴지죠.
이러한 치밀한 구성, 유머와 여유의 완벽한 조화가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가장 위대한 변주곡으로 평가받게 하는 요인이 되었습니다.



기타
이 작품을 연주, 녹음하는 연주자들은 아리아 및 각 변주의 [A-B] 끝에 붙어있는 도돌이표를 지킬지 말지를 선택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도돌이표를 지킨다면 [A - A - B - B]가 되는거죠. 
도돌이표의 여부에 따라 연주 및 감상 시간은 2배로 늘어나며 도돌이표를 지켰을 때는 전곡 연주에 최대 90분이 넘어가는 엄청난 시간이 소요됩니다. 그 유명한 글렌 굴드의 1955년 레코딩의 경우 반복도 없이 엄청난 스피드로 밀어붙여 겨우 39분만에 마무리를 하는 반면 랑랑의 경우 느린 템포에다 도돌이표를 철저히 지켜 무려 93분이 걸리는 연주를 선보였습니다.

글렌 굴드의 1955년 연주

 

랑랑의 2021년 라이브 연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