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분석/낭만파 음악

동물들의 신나는 카니발 - 생상스의〈동물의 사육제〉해설

교클 2024. 1. 26. 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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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rles-Camille Saint-Saëns: 〈The Carnival of the Animals(Le Carnaval des animaux)
 

카미유 생상스(1835-1921). 1880년 사진


프랑스의 작곡가 카미유 생상스의 대표작 중 하나인 모음곡 〈동물의 사육제〉는 어린이들을 위한 음악으로 유명한 곡입니다. 작품을 구성하는 각각의 음악 자체가 짧으면서도 직관적이며 묘사가 뛰어나기 때문에 듣기도 쉬운데다 ‘표제음악이란 이런 것이다’는 것을 설명하기에 더없이 훌륭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죠.

이 곡은 현재 그의 대표작으로 여겨질 만큼 유명하지만 의외로 작곡가가 살아 있을 때에는 몇 번의 비공개 연주만 하고 공개 연주회를 한 적이 없는 작품입니다. 결국 공개 초연은 생상스 사후에나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작곡가 생상스는 이 곡을 단지 친구들과의 파티, 유희를 위한 음악으로 작곡하였기 때문에 이 곡에는 진지하지 못한 장난과 유머, 풍자, 패러디 요소가 많이 들어있습니다. 심지어 몇 몇 곡들은 자신이 이전에 작곡한 다른 곡, 프랑스 민요, 다른 작곡가의 작품들까지 패러디로 인용하기도 했습니다. 생상스가 생전에 이 곡을 공개하지 않은 이유 역시 본인의 이미지 관리+다른 작곡가들의 곡들을 패러디한 것으로 발생할 수 있는 문제들 때문으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결국 〈동물의 사육제〉의 공개 연주회는 작곡가가 사망하고 1년 후인 1922년에 이루어졌는데 이 공연은 청중들의 열광적인 반응을 이끌어내었고 얼마 안있어 생상스의 가장 유명한 작품 중 하나가 됩니다.

작곡가가 크게 가치를 두지 않은 작품이고 생전에 공개한 적도 없는 이 작품이 생상스의 최고 인기 작품이 되었다는 것이 아이러니하지만 그만큼 대중들이 좋아할 만한 재미있고 뛰어난 작품이라는 것을 증명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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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의 분석
작곡연도: 1886년 2월
출판연도: 1922년(13번 곡 ‘백조’는 1887년)
초연: 1886년 3월(비공개 연주회) / 1922년 2월(공개 초연)
악기 구성: 피아노 2대, 플루트, 피콜로, 클라리넷, 실로폰, 글라스하모니카(첼레스타나 글로켄슈필로 대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바이올린 2, 비올라, 첼로, 더블베이스

생상스 - 〈동물의 사육제〉 정주영 지휘, 조재혁,오윤주 피아노, 코리안 심포니 오케스트라 연주

 
이 곡을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경우가 많지만 원래는 실내악 편성의 곡입니다. 둘을 비교해서 들어보면 현악기 5개만으로 연주하는 음악과 현악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음악의 느낌은 상당히 차이가 납니다.


1곡. Introduction et marche royale du Lion (서주와 사자왕의 행진, Introduction and Royal March of the Lion)


피아노의 트레몰로로부터 시작하며 현악기들의 느린 서주가 위압적인 분위기를 조성합니다. 
이 분위기는 피아노의 글리산도로 해소되며 이후 피아노의 행진곡풍에 맞춰 등장한 현의 저음이 사자의 등장을 알립니다. 위엄 있는 사자의 모습을 반음계의 움직임으로 표현하였습니다.


2곡. Poules et Coqs (암탉과 수탉, Hens and Cocks)


피아노와, 클라리넷, 바이올린, 비올라가 닭의 울음소리를 재현하고 있습니다.
이 곡은 바로크 시대 프랑스의 작곡가 라모의 하프시코드 모음곡 〈암탉(La poule )〉의 선율을 차용하였습니다만 훨씬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만들어놓았습니다.
 

3곡. Hémiones (animaux véloces) (야생 당나귀 (매우 빠른 동물))


두 대의 피아노가 짧은 음가를 끊임없이 오르락내리락 하며 길들여지지 않은 당나귀를 묘사하였습니다. 
이 곡은 오직 두 대의 피아노에 의해서만 연주됩니다. 


4곡. Tortues (거북, Tortoises)


피아노 조용히 반주를 해주는 가운데 현악기들이 거북이의 느리고 굼뜬 움직임을 묘사합니다. 
이 곡에서 사용한 선율은 자크 오펜바흐의 오페레타 〈지옥의 오르페〉(한국에서는 ‘천국과 지옥’이라는 제목으로 더 유명합니다.)에 나오는 그 유명한 지옥의 갤럽(일명 ‘캉캉’)입니다. 
원래 원곡은 상당히 빠른 템포의 곡인데 생상스는 느린 거북이를 묘사하기 위해 끔찍할 정도로 느리게 연주하도록 지시합니다. 


5곡. L'Éléphant (코끼리, The Elephant)


거대한 코끼리가 뛰어노는 모습을 묘사하였습니다.
생상스는 더블 베이스로 이 모습을 그렸는데 베를리오즈의 〈파우스트의 천벌〉 중 ‘바람 요정의 춤’의 선율을 인용하였습니다. 그 외에도 멘델스존의 〈한여름 밤의 꿈〉 중 스케르초 역시 들어가 있습니다.


6곡. Kangourous (캥거루, Kangaroos)


두 대의 피아노 만으로 이루어진 곡으로 독특한 리듬으로 폴짝폴짝 뛰어다니는 캥거루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7곡. Aquarium (수족관)


글래스하모니카(혹은 첼레스타나 글로켄슈필), 플루트, 두 대의 피아노와 실로폰, 그리고 현악기가 물의 흐름과 그 속에서 헤엄치는 물고기들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 곡은 특유의 신비로운 분위기로 ‘백조’만큼 자주 인용되는 곡이기도 합니다.


8곡. Personnages à longues oreilles (긴 귀를 가진 사람, Personages with Long Ears)


두 대의 바이올린은 각각 고음역대와 저음역대로 나누어 연주된다. 사람들이라고 묘사되어 있지만 긴 귀라는 묘사와 고음역대와 저음역대를 왔다 갔다 하는 멜로디 당나귀를 묘사하였다는 의견이 많습니다. (3번곡의 야생 당나귀와는 다른 집당나귀) 그리고 생상스가 당대의 음악 비평가들을 풍자한 것이라는 의견도 있습니다.(제목을 보면 분명 생상스는 긴 귀를 가진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9곡. Le coucou au fond des bois (깊은 산속 뻐꾸기, The Cuckoo in the Depths of the Woods)


피아노와 클라리넷으로 연주되는 이 곡은 피아노가 숲 속의 정경을, 클라리넷이 뻐꾸기의 “뻐꾹” 울음소리를 묘사합니다. 생상스는 이 곡에서 클라리넷을 무대 밖에서 연주하도록 지시하였습니다.


10곡. Volière (새장, Aviary)


플루트와 피아노, 현으로 연주되는 이 곡은 제목은 새장 안의 새들을 묘사한 작품입니다. 
플루트의 트릴이 빠르게 날갯짓을 하는 새의 움직임을 묘사합니다. 플루트 주자의 뛰어난 기량이 돋보이는 곡입니다.


11곡. Pianistes (피아니스트, Pianists)


‘동물’의 사육제에 인간이 등장합니다? 심지어 피아니스트라고 하는데 연주하는 곡은 체르니 혹은 하농을 연상시키는 상행-하행의 단순한 음계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곡은 이 단순한 음계가 한 조씩 올라가며 반복되는 구성입니다.
생상스는 이 곡에다 초보자가 치는 것과 같이 연주해야한다고 지시를 하였습니다. 그래서 이 곡의 연주를 들어보면 틀리게 치는 것은 기본이요 아예 작정하고 막나가는(?) 연주들도 존재합니다. (위의 전곡 라이브 연주 12분 50초 즈음을 재생해 보면 바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12곡. Fossiles (화석, Fossils)


11번 곡 ‘피아니스트’와 바로 이어지는 곡입니다.
클라리넷과 실로폰, 현과 피아노 편성이며 특히 실로폰이 두드러지는 곡입니다. 실로폰의 음색이 화석을 발굴하려고 망치와 정으로 돌을 깨부수며 나는 소리를 연상하게 합니다.
생상스의 유명한 작품인 〈죽음의 무도〉를 시작으로 〈아 어머니께 말씀드리죠(흔히 ‘반짝반짝 작은 별’로 유명한 곡)〉을 포함하여 프랑스의 오래된 민요 3개, 로시니의 〈세비야의 이발사〉 중 로지나의 아리아 ‘Una voce poco fa’를 인용하였습니다. 그야말로 패러디의 극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미국의 유명 지휘자 레너드 번스타인은 제목 ‘화석’은 이 곡에서 인용된 오래된 노래들을 비유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13곡. Le Cygne (백조, The Swan)


두 대의 피아노 반주로 연주하는 첼로 곡으로 이 곡은 풍자의 해학이 담긴 유머러스한 이전 곡들과 달리 우아하고 아름다운 선율의 곡입니다.
〈동물의 사육제〉에서 가장 유명한 곡이며 생상스가 생전에 유일하게 발표했던 곡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R.125라는 작품 번호가 이 곡에만 붙어있습니다.
달빛이 비치는 밤 호숫가에 백조가 유영하는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지는 곡입니다.


14곡. Finale (피날레)


앞서 등장했던 모든 악기들이 등장하며 1곡 서주와 같은 도입부로 시작하지만 이후로는 새로운 멜로디가 등장합니다. 앞서 나왔던 동물들의 멜로디가 잠깐씩 들리기도 하지만 이전의 장난스러운 패러디와는 달리 피날레에 걸맞은 화려한 모습으로 마무리합니다.



기타
1.제목에 적혀 있는 ‘사육제’라는 단어는 영어 카니발(Carnival)이라는 명칭으로 더 잘 알려진, 기독교 문화권에서 사순절 시작 전 일주일 정도 펼쳐지는 대축제를 뜻하는 단어입니다.
2.작곡가 생상스는 이 곡에 ‘동물학적 환상곡(Zoological fantasy)’이라는 부제를 붙였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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