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분석/낭만파 음악

슈베르트 최후의 교향곡 - 교향곡 제9번 〈더 그레이트〉

교클 2024. 4. 21. 0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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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anz Peter Schubert-Symphony No.9 in C Major, D 944 〈The Great(Die Große)〉

 

프란츠 패터 슈베르트(1797-1828)



슈베르트의 9번 교향곡인 〈그레이트〉는 슈베르트가 사망하기 몇 년 전인 1824~1826년에 작곡된 곡입니다(예전에는 그가 사망한 연도인 1828년에 완성한 교향곡으로 알려졌지만 최근 연구에 의하면 1825년에 시작하여 1826년에 완성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이름처럼 전곡의 연주 시간이 1시간에 육박하는 대곡으로 당시에는 베토벤의 ‘합창 교향곡’을 제외하면 이것보다 더 긴 교향곡이 거의 존재하지 않았으며 19세기 낭만파 시대를 거치면서 엄청나게 거대해진 후대의 교향곡들과 비교해도 그 길이가 긴 편에 속하는 정말 ‘그레이트’한  곡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처음에 〈그레이트〉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는 슈베르트가 이전에 작곡한 C장조 교향곡(6번)과 구별하기 위하여 붙여진 것이지만 이러한 특징으로 인해 슈베르트가 유명해진 이후로도 제목으로 정착하였습니다.
단지 그 규모뿐만 아니라 작품을 분석해 보아도 슈베르트 작품의 특징인 서정성이 잘 살아있으며 형식 면에서 보아도 기존 작품들에 비해 견고해졌으며 상당히 혁신적인 면도 있기 때문에 작품성으로 보아도 그 이름값을 하는 대작으로 평가됩니다.

하지만 슈베르트 생전에 이 곡이 연주된 적은 없는데 곡의 길이가 너무 긴 데다 당시에는 무명 작곡가의 작품이었던 이 곡의 진가를 알아보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슈베르트는 이 교향곡을 자신의 곡을 자주 연주해준 빈 악우협회에 헌정하며 감사의 표시와 함께 연주 의뢰를 하였고 리허설도 어느 정도 이루어졌지만 결국 공개 연주회가 이루어지지는 않았습니다. 역시 방대한 규모로 인한 난이도의 문제가 컸었죠.

이 곡이 재발견된 것은 슈베르트 사망 후 10여년이 지난 1838년, 로베르트 슈만에 의해서였습니다.
슈만은 생전에 인정받지 못하고 사후에는 완전히 잊혀진 슈베르트를 재발견하여 그를 널리 알리는 데에 큰 공을 세웠습니다.
슈만이 빈에 방문했을 때 이 곡을 발굴하였고 그는 라이프치히로 악보를 가져가 1839년 3월 21일 펠릭스 멘델스존의 지휘로 마침내 첫 연주를 하게 됩니다.
슈만은 이 곡을 두고
“이 교향곡을 들어 보라. 이 교향곡은 장 폴의 4권의 장편 소설 못지않게 천국적으로 길다. 이것들이 모두 좀처럼 끝나지 않는 것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데, 결국 독자들로 하여금 뒤를 마음껏 생각하도록 하게 마련이므로 끊을 수가 없는 것이다. 전곡에 넘치는 풍성한 감명은 얼마나 사람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주는 것인가...마치 꾸며진 것 같은 에피소드이기는 하지만 이 곡이 '그레이트'라 불리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라며 자신이 창간한 잡지 ‘Neue Zeitschrift für Musik(음악신보)’에 이 곡을 찬양하는 글을 게재하였습니다. 이 글에서 나온 표현인 ‘천국적으로 길다.’는 이후 이 교향곡을 상징하는 단어가 되었습니다.

슈베르트가 죽고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야 세상에 선보였지만 아쉽게도 첫 공연은 곡의 길이를 줄인 축소판으로 공연하였습니다. 사실 한동안 이 곡은 그 거대한 규모에서 비롯된 난이도 문제로 무대에 올리기도 힘들었을 뿐더러 청중들의 반응도 상당히 호불호가 갈리는 작품이었으며 이는 심지어 현대에도 종종 보이는 상황입니다.(슈만의 위의 글도 사실 곡이 너무 장황하다는 일각의 지적에 대한 반박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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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베르트-교향곡 제9번 '더 그레이트' 전곡 연주. 게르기예프 지휘, 뮌헨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연주

 

곡의 분석

작곡연도: 1825년 ~ 1826년
헌정: 빈 악우협회(Gesellschaft der Musikfreunde)
초연: 1839년, 독일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연주회에서 펠릭스 멘델스존 지휘
악기 편성: 플루트 2, 오보에 2, 클라리넷 2, 파곳 2, 호른 2, 트럼펫 2, 트럼본 3, 팀파니, 현 5부(제1 바이올린, 제2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더블베이스)


제1악장: Andante – Allegro ma non troppo – Più moto, C장조, 2/2박자

존 엘리엇 가디너 지휘,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연주(이하 동일)

마치 따뜻한 남쪽에서 불어오는 봄바람을 연상시키는 호른의 선율로 곡의 시작을 알립니다.
이 서주 겸 1주제는 이후 전 악장에서 변형된 형태로 등장하며 곡의 통일성을 부여하는 역할을 합니다. 이후 소나타 형식을 따라가며 기나긴 여행을 시작합니다. 
마지막 코다에서는 처음의 그 은은했던 호른의 멜로디가 엄청나게 장대하게 변형되어 멋지게 마무리됩니다.


제2악장: Andante con moto, A단조, 2/4박자

A1-B1-A2-B2-A1의 변형 3부 형식 혹은 변형 소타나 형식으로 분석합니다.
A부분은 서정적인 단조로 되어 미묘한 우울감을 자아내며 B부분은 활기찬 장조로 이루어져 그 감정의 변화가 두드러집니다.


제3악장: 스케르초, Allegro vivace C장조 3/4박자 – 트리오, A장조

스케르초 치고는 상당한 길이의 악장입니다.
중간의 트리오 파트에서 목관악기가 연주하는 멜로디가 상당히 목가적이면서 아름답습니다.


제4악장: 피날레, Allegro vivace C장조 2/4박자. 

소나타 형식입니다.
끝없이 반복되는 부점 리듬의 오스티나토(일정한 리듬을 꾸준히 반복 연주하는 기법)이 특징인 악장으로 곡 전반에서 이러한 리듬이 반복되어 쉴 새 없이 진행된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4악장이 끝나갈 무렵 등장하는 코다가 특히 인상적인데 1시간 가까이 진행된 대곡의 걸맞게 정말 웅장하고 거대한 느낌을 주며 ‘그레이트’라는 제목에 매우 어울리는 멋진 마무리를 들려줍니다.

 



기타
1.이 작품의 교향곡 번호에 대한 논쟁이 있습니다.
바로 이 곡이 슈베르트의 8번 교향곡이냐 9번 교향곡이냐 하는 문제입니다.
이 사태의 원인은 근본적으로 슈베르트가 자신의 작품을 제대로 완성하지 않고 포기해버린 일이 잦았다는 점에서 비롯됩니다.

생전에 슈베르트는 자신의 교향곡들에 번호를 기입하지 않았습니다. 이 곡도 당시에는 그냥 C장조 교향곡이었을 뿐이었죠.
작곡가 사후 브람스가 처음 슈베르트의 작품을 정리하여 발표하였을 때는 이 곡을 7번으로 표기하였습니다. 스케치만 남긴 E장조 교향곡(현재 7번 교향곡으로 부르는 작품)은 제외시켜버리고 2악장까지만 작곡한 b단조 교향곡(흔히 〈미완성〉교향곡이라고 부르는 교향곡)을 이 곡 다음인 8번 교향곡으로 집어넣었죠. 
이후 슈베르트의 작곡 연대에 대한 연구가 많이 진행되면서 초벌 스캐치만 남아있던 E장조 교향곡을 7번에 배치하고 더 먼저 작곡한 것으로 밝혀진 〈미완성〉 교향곡이 〈그레이트〉 교향곡 앞으로 와서 8번이 되었고 〈그레이트〉 교향곡은 9번으로 확립되었습니다...만 스캐치만 남기고 아예 작곡 시도도 하지 않은 7번 교향곡을 정식 교향곡으로 두는 게 맞느냐는 의견도 존재하여 7번을 제외시키고 이 곡을 8번 교향곡으로 부르는 음반이나 문헌, 연주회도 존재합니다.
일단 현재는 여전히 이 작품을 9번 교향곡으로 부르는 것이 대세이긴 합니다만 이 교향곡을 검색할 때는 이런 점을 고려해야 합니다.

 

2.이 교향곡이 한 시간에 육박하는 규모가 된 데에는 비슷한 길이를 가진 베토벤의 그 유명한 ‘합창 교향곡’의 영향을 받았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 작품은 합창 교향곡이 세상에 공개된 후에 작곡을 시작하였으며 슈베르트가 친구에게 쓴 편지에 베토벤의 ‘합창 교향곡’ 초연에 대해 언급한 내용이 존재합니다. 평소 베토벤을 매우 존경하였고 베토벤과 같은 시기에 빈에 살았던 슈베르트가 합창 교향곡을 듣고 자신도 저런 대작을 작곡해봐야겠다고 생각한 게 아닐까 하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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