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음악과 대중음악은 전혀 다른 장르처럼 보이지만, 의외로 많은 대중음악 속에는 클래식 선율이 자연스럽게 녹아 있습니다. 수백 년의 세월을 지나 지금까지 사랑받고 있는 클래식 음악은 그만큼 음악적으로 이미 검증된 멜로디이기도 하죠.
또 하나의 현실적인 이유는 바로 저작권의 자유로움입니다. 대부분의 클래식 작품은 발표된 지 너무 오래되어 저작권이 만료된 상태이기 때문에, 법적인 제약 없이 샘플링하거나 변형해 사용할 수 있습니다. (저작권에 대한 관련 글: https://schoolclassical.tistory.com/174)
이번 글에서는 이러한 클래식 음악을 창의적으로 활용한 K-POP 곡들, 그 중에서도 실제로 클래식 선율을 샘플링한 대표적인 예들을 소개해 보겠습니다.
1. 블랙핑크-<Shut Down>
2022년에 발매한 블랙핑크의 정규2집 타이틀곡인 Shut Down에는 바이올린이 연주하는 주제가 곡 전반에 걸쳐 등장하는데 이 멜로디는 파가니니의 바이올린 협주곡 2번 중 3악장 <라 캄파넬라(La campanella)>라는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18세기 이탈리아의 바이올리니스트 니콜로 파가니니가 작곡했으며, 매혹적인 멜로디와 악마적인 난이도로 당대에도 매우 유명하여 많은 작곡가들이 이 멜로디를 차용해 곡을 만들었습니다. 특히 그 중에서 피아니스트 프란츠 리스트가 피아노 독주곡으로 편곡한 <라 캄파넬라>는 파가니니의 원곡보다도 더 유명한 작품이 되었습니다.
2. i-dle-<Nxde>
2022년 아이들(이 당시에는 (여자)아이들이었죠)의 미니5집 타이틀곡입니다.
이 곡에서 샘플링한 클래식 작품은 비제의 오페라 <카르멘>에 나오는 <하바네라(Habanera)>라는 곡입니다.
<하바네라>는 카르멘 1막에서 여주 카르멘이 등장 후 처음으로 부르는 아리아인데 주옥같은 곡들이 많은 오페라 <카르멘> 안에서도 특히 유명한 곡들 중 하나입니다.
하바네라는 원래 쿠바(쿠바의 수도가 ‘아바나’죠)에서 발생한 춤곡의 양식이었으나, 현재는 하바네라 양식보다는 이 곡 하나만을 가리키는 명칭으로 쓰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원래 하바네라가 특정 곡만을 일컫는 제목이 아니기 때문에 곡의 첫 번째 가사인 <사랑은 길들지 않은 새(L'amour est un oiseau rebelle)>라는 제목으로도 부르곤 합니다.
3.레드벨벳-<Feel my rhythm>
2022년 발매한 레드벨벳의 미니엘범 'The ReVe Festival 2022 - Feel My Rhythm’의 타이틀곡으로 이 곡에서 샘플링한 클래식 작품은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관현악 모음곡 제3번 중 Air, 일명 <G선상의 아리아>로 유명한 작품입니다.
‘G선상의 아리아’는 바흐의 대표적인 작품 중 하나로 원곡은 관현악 모음곡이지만 이 곡을 바이올린 독주곡으로 편곡하면서 바이올린의 G현만을 이용하여 연주한다고 하여 ‘G선상의 아리아’라는 이름으로 부르게 되었습니다.
다만 레드벨벳 곡의 도입부에 사용된 음악은 바이올린 편곡이 아닌, 바흐의 관현악 원곡입니다.
4.여자친구-<Summer Rain>
이 곡은 걸그룹 여자친구가 2017년에 발매한 미니 5집 리패키지 앨범의 타이틀곡입니다.
이 곡에는 슈만의 연가곡집 『시인의 사랑』 중 제1곡인 〈아름다운 5월에〉가 샘플링되었습니다.
『시인의 사랑』은 하이네의 시집 『노래의 책』에 실린 66편의 시 중 16편을 골라 슈만이 곡을 붙인 연가곡집으로, 1840년에 작곡되었습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이 해는 슈만이 오랜 연인 클라라와의 그 유명한 로맨스 끝에 마침내 결혼에 성공한 해이기도 합니다.
험난했던 고난 끝에 성공한 결혼이 슈만의 창작열에 크게 영향을 끼친 듯 슈만은 이 시기에 수많은 명곡들을 탄생시켰으며, 그 중에서도 『시인의 사랑』은 그의 대표적인 가곡 작품으로 손꼽힙니다.
5.AKMU-<오랜 날 오랜 밤>
마지막으로 소개할 곡은 남매 듀오 그룹으로 유명한 악뮤(당시에는 악동뮤지션)가 2017년에 발매한 정규2집 <사춘기 下>의 타이틀곡입니다.
악뮤가 샘플링한 클래식 음악은 모르는 사람이 없는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클래식 음악 중 하나인 파헬벨의 캐논입니다.
캐논이란 단순한 곡의 제목이 아닌 음악 양식을 뜻하며 여러 성부가 순차적으로 같은 멜로디를 연주하거나 부르는 음악형식으로 학창시절 음악시간에 배운 '돌림노래'가 대표적인 카논 중 하나입니다. 파헬벨의 캐논 역시 세 개의 성부가 일정한 간격으로 순차적으로 같은 멜로디를 연주하는 곡이죠. 하지만 그 아름다운 멜로디와 3개의 성부가 만들어내는 조화가 듣는 사람에게 큰 감동을 줍니다.
(캐논 양식과 파헬벨의 캐논에 대한 글: https://schoolclassical.tistory.com/112)
파헬벨의 캐논의 경우 장르를 가리지 않고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편곡 및 샘플링한 곡이며 <오랜 날 오랜 밤> 외에도 캐논을 샘플링하여 만든 수 많은 대중음악들이 존재합니다. 노라조의 <Gaia>, 양파의 <사랑...그게 뭔데>, 피플크루의 <너에게> 등 정말 많은 곡들이 있으며 팝송까지 찾아본다면 Sweetbox의 <Life is Cool>를 포함, 이 글에서 다 적지도 못할 만큼의 곡들이 있습니다.
이처럼 클래식 음악은 단순히 과거의 유물이 아닌, 현재까지도 수 많은 대중음악에 영감을 주면서 살아있습니다.
수백년을 버티며 검증된 음악이 트렌디한 편곡과 결합할 때, 그 음악은 세대를 넘어선 감동을 선사하죠.
앞으로도 클래식이 K-POP과 결합하여 오래된 명곡들이 지금의 음악 안에서 어떻게 재해석될지 지켜보는 것도 또 하나의 즐거움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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