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음악 업계에서는 원 히트 원더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한 곡의 히트곡으로 엄청난 인기를 누렸지만 그 이후로 더 이상 그만한 히트곡을 남기지 못한 뮤지션을 두고 부르는 단어입니다.
물론 이 단어는 대중음악계에서 쓰이는 단어로 클래식 음악계에서는 사용하지 않는 단어입니다.
우리가 듣는 클래식 음악들의 상당수는 나온 지 100년이 훌쩍 넘은 곡들이며 당대에는 많은 인기를 얻었지만 현재는 완전히 잊혀저버린 곡들 또한 부지기수입니다.
그럼에도 해당 단어의 정의와 일치하는, 현재는 단 한 곡만이 대중들에게 인기를 얻고 있고 연주되는 작곡가들은 분명 존재합니다.
이런 작곡가는 대중음악계의 ‘원 히트 원더’라는 단어에 부합되는 사례라고 볼 수 있죠.
이번 글에서는 이처럼 클래식 음악계에서 단 한 곡만이 연주되고 소비되는 원 히트 원더 작곡가들 10명을 소개해 보겠습니다.
(순서는 시대순입니다.)
1.파헬벨 - 캐논
아마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클래식 음악 중 하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파헬벨의 〈캐논〉은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이나 비발디의 〈사계〉 등과 함께 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 중 하나로, 클래식에 관심이 있든 없든 이 곡을 한 번도 들어보지 않은 분은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특히 원곡뿐만 아니라 크로스오버, 대중음악, 심지어 국악 등 다양한 장르에서 편곡·인용되어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곡은 한때 오랫동안 잊혀진 작품이었습니다. 파헬벨은 다른 바로크 시대 작곡가들과 마찬가지로 사후에는 거의 주목받지 못했으며, 그의 악보들조차 많이 유실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1919년 음악학자 구스타프 배크만이 이 곡을 발굴하여 출판하면서 다시 세상에 알려졌고, 1980년 영화 《보통 사람들》에 삽입되면서 큰 인기를 얻게 되었고, 1982년 조지 윈스턴이 자신의 음반에 수록하였는데 이 음반이 세계적으로 300만장 이상 판매되며 지금과 같은 큰 인기를 얻기 시작했습니다.
그 후로는 클래식 외에도 국악, 대중음악, 록 등 수많은 장르에서 리메이크되며 지금까지도 꾸준히 사랑받는 명곡이 되었습니다.
2.비탈리 - 샤콘느
바로크 시대의 작곡가 토마소 안토니오 비탈리의 작품으로 한국에서는 ‘지상에서 가장 슬픈 곡’이라는 별칭으로도 유명합니다.
샤콘느라는 제목은 바로크 시대에 유행한 악곡 형식으로, 반복되는 화성과 베이스라인을 기초로 하여 멜로디가 변주되는 형식의 곡입니다. 유명한 샤콘느로는 바흐의 무반주 바이올린 파르티타 2번 중 마지막 곡과 비탈리의 이 작품이 대표적이죠.
사실 비탈리라는 작곡가는 가끔 비발디와 혼동받기도 할 정도로 인지도가 낮으며 애초에 대다수의 작품이 소실되어 남아있는 작품 자체가 거의 없습니다. 그의 작품 중 거의 유일하게 남아있는 이 작품도 끊임없이 위작 논란이 일어나고 있죠.
곡의 멜로디나 구성 등이 당대 바로크 스타일과 많이 다르며 이 작품도 원본이 없이 필사본만 남아있는 실정이기 때문입니다.
이 작품이 위작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곡의 진짜 작곡가를 주로 이 작품을 처음 출판했던 19세기 바이올리니스트 페르디난트 다비드가 작곡했다고 하죠. 그럼에도 일단 필사본은 분명 남아있기 때문에 비탈리의 작품이라는게 현재까지는 정설입니다.
3.타르티니 - 악마의 트릴
이탈리아의 작곡가이자 바이올리니스트인 주세페 타르티니의 대표작인 바이올린 소나타 <악마의 트릴>에는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습니다.
주요 내용은 꿈에서 악마와의 계약을 맺고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서 신기에 가까운 곡을 듣고 깨어나 꿈에서 들은 곡을 옮겨 적었다는 이야기인데 상당히 매력적이고 흥미를 끄는 이야기지만 이 이야기가 정말 사실인 지는 알 수 없습니다.
악마와의 계약 어쩌고 하는 스토리는 후대의 바이올리니스트인 파가니니를 포함해 여러 사람들에게 존재하기 때문에 당시의 마케팅 수법 중 하나라고 생각하면 될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뻔한 이야기가 아직까지도 이어져 내려올 수 있던 이유는 악마라는 수식어에 걸맞는 어려운 난이도 + 매혹적인 멜로디의 조화로 이루어진 이 작품의 뛰어난 음악성 덕분일 것입니다.
참고로 트릴이라는 단어는 악상 기호중의 하나로 기준음과 그 음의 2도 위의 음(ex 도-레 or 레-미)을 빠르게 번갈아가면서 연주하는 꾸밈음을 뜻합니다.
곡 전반에 걸쳐 엄청난 숫자의 트릴이 들어있기 때문에 지금 기준으로도 어려운 곡이며 이 곡이 처음 나왔던 당시에는 이름처럼 정말 악마적인 난이도의 난곡이었습니다.
4. 글린카 - 루슬란과 루드밀라 서곡
러시아 국민악파의 선구자인 미하일 글린카의 오페라 <루슬란과 류드밀라>에 등장하는 서곡입니다.
작곡가 글린카는 러시아 클래식 음악계에서 처음으로 국제적인 명성을 얻은 작곡가로 러시아 클래식 작곡가 라인의 시조가 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빠르고 에너지 넘치는 관현악곡으로 <루슬란과 류드밀라> 오페라 자체는 현재 유명하지 않지만 이 서곡만큼은 오페라와 독립적으로 매우 많이 연주되며 그의 작품 중에 대중적으로 유명한 유일한 작품이 되었습니다.

5. 요한 슈트라우스 1세 - 라데츠키 행진곡
이 곡은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신년음악회에서 항상 마지막을 장식하는 앵콜곡으로 신년음악회를 상징하는 가장 유명한 곡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유명한 것은 신년음악회에서 이 곡을 연주할 때는 박자에 맞춰서 관객들이 같이 박수를 치는 것입니다. 박수 치는 타이밍도 신경을 쓰는 엄숙한 연주회장에서 이는 굉장히 이례적인 사례죠. 이 불문율에 영향을 받았는지 현재는 다른 연주회에서도 이 곡이 앵콜로 나오면 다들 리듬에 맞춰 박수를 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마치 관객들이 함께 떼창을 하는 대중음악 콘서트나 관객이 추임세를 넣어주는 국악 공연과 비슷한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목의 라데츠키는 다름 아닌 사람 이름으로 그 주인공은 19세기 당시 오스트리아 제국의 장군인 요제프 라데츠키 입니다.
이 곡이 만들어진 배경은 다름아닌 라데츠키 장군이 이탈리아의 독립과 통일을 이루려는 사르데나 왕국의 군대를 이탈리아의 노바라에서 박살내 버리고 오스트리아로 개선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서 요한 슈트라우스 1세가 작곡한 승전 기념곡입니다.
지금은 오스트리아가 이탈리아보다 훨씬 작은 나라지만 당시 오스트리아는 가진 유럽 최강국들 중에 하나였고 이탈리아는 여러 국가들로 분열된 체 대부분의 나라들이 오스트리아의 영향력 아래에 있었죠.
당시 라데츠키 행진곡은 이러한 정치적인 배경으로 오스트리아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었으며 현재는 이러한 정치적 색채가 싹 빠진 채 신나는 행진곡으로 소비되고 있지만 피해자의 입장인 이탈리아에서는 아직까지도 이 곡의 연주를 꺼려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6. 발라키레프 - 이슬라메이
음악시간에 한 번쯤 이름을 들어보았을 일명 ‘러시아 5인조’ 의 일원인 밀리 발라키레프의 피아노곡입니다.
이 작품은 이름에서 느껴지듯 이슬람 및 중앙아시아 음악의 영향을 받아 작곡한 곡으로 발라키레프를 대표하는 곡이자 무엇보다도 극악의 난이도로 유명한 작품이죠.
이 곡의 난이도가 얼마나 악명이 높으면 인터넷에서 가장 어려운 피아노곡을 검색하면 이 작품의 이름을 쉽게 찾을 수가 있을 정도입니다. 물론 어려움이라는 기준이 주관적이기도 하고 테크닉적으로도 더 어려운 작품들도 분명 존재하지만 이 곡이 엄청난 난곡인 것은 사실입니다.
예를 들면 라벨의 <밤의 가스파르> 중 3번곡 ‘스카로보’는 라벨이 이슬라메이보다 더 어려운 곡을 작곡하겠다는 야심으로 나온 결과물이죠.

7. 뒤카 - 마법사의 제자
〈마법사의 제자〉는 프랑스의 작곡가 폴 뒤카가 작곡한 교향시입니다.
프랑스의 작곡가이자 교육가인 뒤카는 많은 작품들을 남기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유명한 작품이 존재합니다. 바로 이 작품이죠.
이 곡은 괴테의 시 《마법사의 제자》를 기초로 하여 음악으로 만든 표제음악입니다.
화려한 마법을 묘사하는 색채감과 한바탕 소동을 묘사한 요란함이 돋보이는 곡으로 원작 시의 줄거리를 매력적으로 묘사한 모범적인 인상주의 음악이자 표제음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이 곡은 원래도 작곡가의 대표작이긴 했지만 디즈니의 애니메이션 영화 〈환타지아〉를 통해 세계적인 인기를 얻게 되었는데, 영화 중 미키 마우스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마법사의 제자〉파트는 지금까지도 사랑받고 있습니다.
8. 몬티 - 차르다시
차르다시란 헝가리의 민속 춤 및 춤곡을 뜻하는 단어입니다. 느리고 서정적으로 시작했다가 매우 빠른 템포로 끝나는 게 가장 큰 특징입니다.
차르다시 양식의 곡은 프란츠 리스트, 요하네스 브람스, 차이코프스키, 요한 슈트라우스 2세 등 많은 대작곡가들이 작곡을 한 적이 있지만 정작 차르다시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가장 많은 사람들이 떠올리는 곡은 그들보다 훨씬 덜 유명한 이 몬티라는 작곡가의 작품입니다.
이탈리아의 작곡가 비토리오 몬티가 작곡한 이 작품은 차르다시 형식의 바이올린 곡으로 매력적인 멜로디와 바이올린에서 사용되는 다양한 기교들이 등장하며 음악 마니아 및 바이올리니스트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는 곡입니다.

9. 홀스트 - <행성> 모음곡
영국의 작곡가 구스타브 홀스트의 대표작인 〈행성〉은 1914~1916년에 작곡되어 1918년에 공개된 그의 대표작입니다. 화려하고 웅장한 관현악이 인상적인 작품이죠.
이 작품은 천문학적 주제 덕분에 미국-소련간의 우주 경쟁으로 우주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으로 증가한 20세기 중반 이후 더욱 큰 인기를 얻게 되었으며 제목에서 느껴지는 우주적 분위기로 인해 〈스타워즈〉 등 현대 SF 영화음악에도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하지만 이 곡에는 아이러니한 점이 몇 가지 있는데 우주 음악의 대표로 언급되는 현재의 분위기와는 달리 작곡가는 천문학이 아닌 점성학에서 영감을 받아 작곡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행성 이름의 유래가 된 그리스‧로마 신화의 신들의 이미지를 음악으로 표현했다고 보시면 됩니다. 각 행성마다 붙어있는 부제를 보면 바로 알 수가 있죠.(예를 들면 <화성>은 ‘전쟁을 가져오는 자’ 라는 부제가 있습니다.)
그리고 작곡가 홀스트 본인은 이 곡을 절대 자신의 가장 뛰어난 곡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고 자신의 다른 더 좋은 곡들이 이 곡의 인기에 묻혀 버린 것이 불만이었다고 합니다.
10. 오르프 - <카르미나 부라나>
20세기 독일의 작곡가 겸 음악교육가인 칼 오르프의 칸타타로 현대음악이 클래식 업계의 주류에서 밀려난 1930년대에 등장한 작품 치고는 매우 큰 인지도를 얻은 작품입니다.
<카르미나 부라나>는 원래 중세시대 세속 시집을 칭하는 단어로 오르프가 이 시집에 수록된 시들 중 24편을 발췌하여 1937년 작곡하였습니다.
이 작품은 발표하자마자 큰 인기를 끌었고 곡의 인기에 힘입어 오르프는 속편으로 〈카툴리 카르미나〉(Catulli Carmina, 1943), 〈아프로디테의 승리〉(Trionfo Di Afrodite, 1953)를 작곡하였습니다. 이 세 작품들을 묶어서 승리 3부작(Trionfi)으로 칭합니다.
<카르미나 부라나>는 25개의 곡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특히 첫 곡인 <O Fortuna>의 경우 안 들어본 사람이 없을 만큼 유명한 곡입니다.
<행성>을 제외한 자신의 다른 작품들이 소외받는 것에 불만이었던 홀스트와 달리 오르프는 이 곡을 두고 “여태까지 내가 쓴 모든 것은 없앨 수 있다. 나의 작품 컬렉션은 〈카르미나 부라나〉와 함께 시작된다.”고 언급할 만큼 크게 만족했습니다.
아쉽게(?) 탈락한 명단
11.비발디 - 사계
일반인들 사이에서는 그 유명한 <사계> 말고는 유명한 곡이 없는 작곡가 정도로 취급받는 일이 많지만 사실 비발디는 사계 이외에도 유명한 곡이 제법 많은 작곡가입니다.
대표적으로 합주 협주곡 <조화의 영감> 중 6번 곡인 바이올린 협주곡 A단조(RV356)가 있죠. 오래전 서울 지하철에서 맨날 나오던 음악이기도 하며 바이올린을 배우는 학생들이라면 한 번쯤 건드려 본 곡이기도 합니다.
그 이외에 칸타타 <Cessatem, Omai, Cessate(그만 두어라, 이젠 끝났다)> 역시 한 번 쯤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영화 ‘친절한 금자씨’에 나와서 유명해진 작품이죠.
12. 사티 - 짐노페디 1번
프랑스의 작곡가 에릭 사티의 대표작 짐노페디도 아쉽게 탈락했습니다.
이 짐노페디는 3개의 곡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중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익숙한 그 곡은 1번 곡입니다.
특유의 서정적인 멜로디가 매력적인 작품으로 에릭 사티의 작품들 중에 가장 유명한 작품이지만 왈츠 풍의 가곡 <Je te veux (난 당신을 원해요)> 역시 짐노페디만큼은 아니지만 많은 사람들이 들어본 적 있는 작품입니다(주로 결혼식 축가와 같은 로맨틱한 상황에 어울리는 작품입니다.)
그 외에도 <Gnossiennes> 같은 작품들도 나름 인지도가 있습니다. (같은 멜로디를 840번 연주하는 걸로 악명높은 <Vexations(벡사시옹)>도 유명합니다.)
13.타레가 -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스페인의 기타 연주자 및 작곡가인 프란시스코 타레가의 대표적인 작품입니다.
타레가의 가장 유명한 곡이자 클래식 기타리스트들에게는 꿈의 작품이면서 클래식 기타 작품들 중에서는 대중적으로도 손에 꼽을 만큼 유명한 작품이기도 하죠.
이 곡의 인지도나 위상으로 보았을 때 본문에 TOP10에 들어갈 만한 작품이긴 했지만 사실 이 곡 말고도 라그리마, 아라비아 기상곡 등의 작품도 기타리스트 사이에서는 나름 유명한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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