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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잡설

클래식 음악계의 ‘호타준족’: 오페라와 기악곡을 모두 제패한 거장들

by 교클 2026. 5. 3.

 

야구를 즐겨보는 사람이라면 호타준족이라는 단어를 알고 잘 아실 겁니다.

정교한 타격과 빠른 발을 모두 가진 만능 선수를 두고 칭하는 단어인데 굳이 이런 선수를 칭하는 단어가 따로 있는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타격과 주루에 요구되는 능력이 다른데 하나만 잘하는 것도 힘든 프로의 세계에서 두 가지를 다 잘하는 선수는 그만큼 희귀하면서도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죠.

클래식 음악사에도 이와 비슷한 사례가 존재합니다. 
클래식 작곡가들의 어떤 작품들을 작곡했는지를 분석하면 보통 기악곡 작곡가들과 오페라 작곡가로 나눌 수가 있습니다. 
사실 클래식이 낯선 분들, 특히 언어의 장벽이 있는 한국 관객들에게 오페라는 다가가기 어려운 장르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클래식 음악 역사에서 오페라는 많은 작곡가들이 창작 활동에서 가장 많은 역량을 투입한 핵심 장르였습니다.
당대 작곡가들에게 오페라는 성공만 한다면 막대한 부와 명예를 거머쥘 수 있는 가장 화려한 무대였으니까요. 그러나 오페라는 아름다운 음악은 물론, 흡인력 있는 대본, 수많은 성악가와 오케스트라, 그리고 이를 뒷받침할 자본력까지 삼박자가 맞아야 하는 ‘종합 예술’이었기에 흥행에 성공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바흐, 쇼팽, 브람스, 브루크너, 말러와 같은 작곡가들은 오페라를 전혀 작곡하지 않았으며 하이든, 슈베르트 같은 작곡가들은 여러 오페라를 작곡하긴 한 두 곡 정도만 작곡하거나 작품성이 떨어져 당대에나 지금이나 별로 관심을 받지 못합니다. 베토벤과 드보르자크와 같은 대작곡가들도 기껏해야 한 곡 정도의 히트작들만 가지고 있습니다.

반대로 로시니, 바그너, 베르디, 푸치니와 같은 작곡가들은 대부분의 창작 활동을 오페라에 쏟은 ‘오페라 전문가’들이며 가끔 교향곡이나 실내악 곡 같은 작품들을 작곡했지만 대부분은 습작 내지 오페라 전문가의 일탈 정도로만 취급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두 분야 모두에서 모두 무시할 수 없는 영향력을 가진 명작을 여럿 작곡한 작곡가들이 분명 존재합니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오페라와 기악곡 양쪽에서 모두 뛰어난 역량을 발휘한 클래식계의 ‘호타준족’ 작곡가들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기준은 오페라와 기악곡에서 지금까지 연주와 레코딩이 이루어지는 작품을 3가지 이상 작곡한 멀티플레이어 작곡가들입니다.)

 



1.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헨델(Georg Friedrich Händel)

 


바흐와 함께 바로크 시대를 대표하는 작곡가 중 하나인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헨델은 현재 오라토리오 <메시아>로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장르를 가리지 않고 수 많은 명작들을 남긴 위대한 작곡가였으며 또한 젊은 시절에는 뛰어난 건반악기 연주자이기도 하였습니다. 

 

헨델과 도메니코 스카를라티의 하프시코드 배틀. 헨델이 이탈리아에서 활동하던 젊은 시절 실제 있었던 일화를 바탕으로 만든 장면입니다. 오르간과 하프시코드로 경연을 벌였고 결과는 하프시코드는 스카를라티 승, 오르간은 헨델의 승이었다고 전해집니다.

 

그런 
그가 <메시아>의 대흥행으로 오라토리오에 전념하기 이전에 가장 공을 들인 장르는 다름 아닌 오페라입니다.
독일 출신 작곡가였던 헨델이 영국으로 귀화한 이유도 당시 유럽에서 가장 부유하고 국제적인 도시 중 하나였던 런던에서 오페라 작곡가로 대성공을 거두게 되며 막대한 부를 거머쥐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헨델 사후 오랫동안 그의 오페라는 자주 연주되지 않고 기껏해야 아리아 몇 곡 정도만이 연주되었지만 현재는 그의 오페라들의 음악성과 중요성이 재평가를 받아 많은 음반들이 발매되었으며 종종 공연도 이루어지고는 합니다. (다만 아쉽게도 한국에서는 아직 그의 오페라들의 공연을 쉽게 보기 힘든게 현실입니다.)

헨델의 대표적인 오페라 작품들로는 <리날도>, <세르세>, <줄리오 체사레>, <로델린다>, <아리오단테>, <알치나> 등이 있으며 그 외 기악곡 및 비오페라 작품들로는 그 유명한 <메시아>, 조지 1세와의 일화로 유명한 <수상음악>, <왕궁의 불꽃놀이>, 하프시코드 모음곡 등이 유명합니다.

 



2.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Wolfgang Amadeus Mozart)

7살의 모차르트


모차르트는 음악사 최고의 천재 작곡가라는 이미지에 걸맞게 오페라와 기악곡 양쪽에서 완벽한 균형과 성취를 이룬 대표적인 작곡가입니다.
모차르트는 41개의 교향곡과 27개의 피아노 협주곡, 5개의 바이올린 협주곡, 그리고 18개의 피아노 소나타 등 짧은 생애에도 주옥같은 작품들을 작곡한 작곡가입니다. 그런 그의 창작 활동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분야는 다름아닌 오페라입니다.
 
그는 어릴 때부터 연주여행으로 여러 나라들을 돌아다니며 흡수한 음악적 소양을 바탕으로 일찍부터 오페라를 작곡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모차르트는 궁정이나 귀족가문 혹은 교회에 소속되어 있지 않고 연주회와 악보출판, 레슨 등으로 돈을 벌었던 프리랜서 음악가의 선구자였기 때문에 안정적인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오페라의 흥행이 중요하였습니다. 뛰어난 작곡가였던 모차르트는 빈에서 <피가로의 결혼>, <돈 조반니> 등의 명작 오페라들을 연달아 성공시키며 전성기를 누렸습니다.
1791년 모차르트는 최후의 오페라로 <마술피리>를 작곡하여 대성공을 거두었으나, 안타깝게도 그 후 2달 뒤 35세라는 짧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고 맙니다.

 

모차르트-오페라 <마술피리> 중 '지옥의 복수심이 내 마음에 끓어오르고'(일명 '밤의 여왕 아리아'). 소프라노 조수미 노래

 

모차르트는 교향곡을 작곡하면서 쌓아올린 관현악 작곡 능력을 바탕으로 성악가들 반주에 그치던 기존 오케스트라의 영역을 더욱 능동적으로 만들었고 오페라 등장인물들의 묘사를 기존의 평면적인 묘사에서 더욱 섬세하고 입체적으로 묘사하였으며 음악이 이야기와 유기적으로 연동되는 구조를 확립하였습니다. 
마침내 모차르트는 오페라의 '음악과 연극의 완벽하고 불가분한 결합’을 완성하였으며 기존의 오페라들에 비해 한 차원 발전한 혁신을 이루어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모차르트의 대표적인 오페라 작품들로는 <피가로의 결혼>, <돈 조반니>, <코지 판 투테>, <마술피리> 등이 있으며 기악 작품들로는 교향곡 25, 40, 41번, 피아노협주곡 20번, <작은별 변주곡>, 피아노 소나타 11번(3악장이 그 유명한 <터키 행진곡>입니다), 16번 등이 있습니다.


음악사에서 낭만파 시대에 접어든 이후에는 한 작곡가가 여러 장르의 곡들을 두루두루 섭렵하기보다는 자신의 주력 장르만을 파고드는 ‘스페셜리스트’들이 많아졌습니다. 파가니니나 쇼팽, 리스트 같은 천재적인 연주자들은 자신의 악기를 위한 곡들을 작곡하였고 말러와 브루크너는 교향곡에 역량을 집중했으며, 바그너, 베르디, 푸치니는 거의 모든 작품이 오페라였습니다.
러시아 출신의 차이코프스키나 보로딘, 체코의 안토닌 드보르자크, 스메타나 등 기악곡으로 명성을 떨친 작곡가들이 오페라에 도전하기도 했지만 그들의 작품들은 대부분 흥행에 실패하거나 잘해봐야 한 두 곡 정도만 흥행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런 스페셜리스트의 시대에도,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완벽하게 잡아낸 작곡가가 있었습니다.

 



3. 리하르트 슈트라우스(Richard Strauss)


19세기 말 ~ 20세기 중반까지 활동한 후기 낭만파를 대표하는 작곡가 중 하나인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는 뛰어난 지휘자였으며 동시에 당대 최고 수준의 관현악법의 대가였습니다. 스탠리 큐브릭의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의 인트로에 삽입되어 일반인들에게 가장 유명한 작품인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들으면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뛰어난 관현악 작곡 능력을 자랑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는 바그너 이후 독일 최고의 오페라 작곡가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는 1894년 첫 오페라 <군트람>을 작곡하였으며(다만 결과적으로는 처참하게 실패했습니다. 작곡가 본인이 훗날 이 실패를 가지고 유머 소재로 삼았을 정도…) 1900년 이후부터는 꾸준히 오페라를 작곡하여 세 번째 작품인 <살로메>가 엄청난 논란과 함께 센세이셔널한 흥행으로 오페라 작곡가로 첫 성공을 거두게 되었습니다. 이후 <엘렉트라>, <장미의 기사> 등을 연달아 성공시키면서 독일을 대표하는 오페라 작곡가의 위치에 올라가게 됩니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오페라 <살로메> 중 '일곱 베일의 춤'. 소프라노 말린 비스트룀

 

앞서 언급한 것처럼 그의 오페라 작품은 거의 모두 20세기 이후에 작곡을 하였는데 20세기 이후에 이만큼 많은 흥행작을 만든 작곡가는 오페라 전문 작곡가였던 자코모 푸치니 정도밖에 없습니다. 
관현악법의 대가 답게 슈투라우스의 오페라는 대편성의 오케스트라가 뽐내는 화려하고 웅장한 관현악 사운드와 더불어 성악가들, 특히 소프라노들을 극한으로 몰아붙이는 어려운 난이도가 특징입니다.(이는 그의 아내가 당대의 뛰어난 소프라노 출신이었기 때문에 소프라노에 대한 이해도가 높았기 때문으로 추측할 수 있습니다.)

초창기 오페라 작품들인 <살로메>와 <엘렉트라>에서는 인간의 무의식과 욕망을 사실적으로 그려낸 스토리와 더불어 과감한 불협화음으로 형식의 파괴를 추구하였으며 이후 대본작가 휴고 본 호프만슈탈의 작업하여 만든 <장미의 기사> 등의 작품들에서는 신고전주의 스타일로 한결 더 가벼워진 대신 너무 난해하지 않으면서도 완성도가 뛰어난 작품들을 발표하였습니다. 작품성과 대중성을 모두 갖춘 그의 오페라들은 오늘날 전 세계 오페라 극장의 핵심 레퍼토리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오페라로는 <살로메>,<엘렉트라>, <장미의 기사>,<낙소스의 아라아드네>,<그림자 없는 여인>,<아라벨라>, <카프리치오> 등이 있으며 기악곡들로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알프스 교향곡>, <가정 교향곡>, <돈 후안>, <영웅의 생애> 등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