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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분석/고전파 음악

천재의 죽음이 만든 작품 - 모차르트 <레퀴엠>

by 교클 2026. 6. 8.

Wolfgang Amadeus Mozart - Requiem in d minor K.626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1756-1791) *참고로 이 유명한 초상화는 모차르트 사후인 1819년에 그린 그림입니다.

 


모차르트의 레퀴엠은 클래식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작곡가 중 하나이자 요절한 천재의 상징과 다름 없는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의 유작입니다.
모차르트가 미처 다 완성하지 못하고 사망했지만 작곡한 분량의 음악적 완성도가 매우 뛰어났다는 점에서 사람들의 안타까움을 많이 불러일으켰으며 특히 죽은 사람을 위한 진혼곡인 레퀴엠을 작곡하다가 자신이 죽었다는 이 드라마틱한 스토리 때문에 이 작품에 얽힌 이야기들도 많아 사람들의 흥미를 더욱 끌죠.

이 작품은 모차르트가 사망한 연도인 1791년 여름에 작곡을 시작하였습니다.
곡을 위촉한 대상은 발제크 백작. 그는 작곡료로 50두카텐을 약속했으며 심지어 그 중 절반을 선금으로 지급하였습니다. 다만 위촉 대상의 신원에 대해서는 철저히 비밀에 붙였습니다. 검은 옷을 입은 정체불명의 의뢰인(발제크 백작의 중개인)의 수상한 요청에 모차르트는 불길한 느낌을 받았지만 당시 경제적 어려움에 처한 모차르트에게 와중에 대학교수 1년 연봉과 맞먹는 50두카텐이라는 금액은 포기할 수 없는 제안이었습니다.
모차르트는 먼저 진행 중이던 오페라 ‘마술피리’와 ‘티토 왕의 자비’의 작곡 마무리 및 초연을 준비하는 동시에 레퀴엠의 작곡을 동시에 진행합니다. 
한 사람이 동시에 진행하기에 매우 힘든 스케줄이었지만 돈이 급했던 모차르트는 혹여나 발제크 백작이 마음을 바꿔 계약을 파기하는 대참사가 일어나면 안되었기 때문에 무리하게 진행을 합니다.
먼저 작곡 중이던 두 오페라는 9월에 발표를 하였으며 급하게 완성했던 ‘티토 왕의 자비’는 평가가 애매했지만 6개월에 걸쳐 작곡한 ‘마술피리’는 역대 모차르트 오페라 초연 중 손에 꼽을 만큼 대성공했으며 모차르트는 10월부터 본격적으로 레퀴엠 작곡에 착수를 했습니다. 그러나…

모차르트가 레퀴엠 작곡에 한참 열중하고 있던 11월 20일, 고열에 시달리던 모차르트는 구토를 하며 쓰러졌으며 이후 침대에 누워있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모차르트가 언제부터 병에 시달렸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알려진 사실이 없습니다. 쓰러지기 오래 전부터 병에 시달렸는지 급작스럽게 병에 시달렸는지에 대해서는 이견이 존재합니다.
어찌되었던 모차르트의 병세는 나아지기는 커녕 시간이 지날수록 급격하게 악화되었습니다. 
제자 프란츠 쥐스마이어의 도움으로 병상에서도 작곡을 지속한 모차르트였지만 결국 곡을 완성할 수는 없었습니다. 모차르트는 쓰러진 후 겨우 2주 쯤 지난 12월 5일 새벽 1시경 숨을 거두고 맙니다. 레퀴엠의 부속가(Sequentia) 중 마지막 파트인 ‘라크리모사’의 8마디까지를 작곡한 시점이었습니다.



사망 이후
모차르트는 죽었지만 계약은 남아있었습니다. 모차르트가 죽고 홀로서기를 해야 했던 아내 콘스탄체는 계약의 파기를 막고 잔금을 받아내기 위해 곡의 나머지 부분을 완성해줄 작곡가를 은밀하게, 하지만 다급하게 몰색하기 시작했습니다. 
우선 모차르트의 제자 겸 동료 작곡가로 뛰어난 음악적 능력을 가진 요제프 폰 아이블러에게 의뢰를 했습니다. 아이블러는 모차르트가 생전에 남긴 부속가 부분의 오케스트레이션을 완성하였고 라크리모사의 2마디를 더 작곡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천재 작곡가의 대곡을 완성해야 한다는 중압감을 이겨내지 못해 그 이상은 작곡하지 못하고 다시 작품을 돌려주었습니다.
결국 모차르트의 마지막을 함께 한 제자 겸 조수였던 작곡가 프란츠 크사버 쥐스마이어가 곡의 완성을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쥐스마이어는 음악사에 큰 족적을 남길 만한 거장은 아니었지만, 모차르트의 최후를 곁에서 지키며 레퀴엠의 작곡 과정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본 인물이었습니다. 임종 전에 모차르트가 완성하지 못한 부분의 전개 등에 대해서도 분명 음악적 지시사항을 받았을 것입니다.
쥐스마이어는 오랜 기간에 걸친 작업 끝에 곡을 완성해내었고 1792년 말 모차르트의 위조된 서명과 함께 발제크 백작에게 성공적으로 도착하였으며 1793년 1월 2일 전곡 초연이 이루어집니다.

모차르트-레퀴엠, 윌리엄 크리스티 지휘

 


 

곡의 구성

레퀴엠은 미사의 일종이지만 그 성격이 죽은 자를 위한 미사인만큼 일반적인 미사와는 그 구성이 다릅니다.
일반적인 미사가 다섯개의 통상문(Kyrie - Gloria - Credo - Sanctus - Agnus Dei)으로 거의 고정된 데 반해 레퀴엠은 입당송 (Introitus)-자비송 (Kyrie)--부속가 (Sequentia)-봉헌송 (Offertorium)-거룩하도다 (Sanctus)-하느님의 어린양 (Agnus Dei)-영성체송 (Communio)을 기본으로 하여 작곡가마다 약간의 변화를 주는 방식입니다.
장례라는 상황과 어울리지 않는 대영광송(Gloria)과 신경(Credo)이 생략된 대신 진노의 날(Dies irae) 같은 부속가가 대신 들어가 있죠.

1.입당송 (Introitus): 레퀴엠에서 서곡 역할을 하는 곡이며 모차르트가 성악부와 오케스트레이션 전체를 100% 완성한 유일한 곡입니다. 바순과 바셋 호른이 어둡고 무거운 D단조의 선율을 연주하며 죽음의 비통한 분위기를 조성합니다.

2.자비송 (Kyrie): 2중 푸가 형태로 된 곡으로 모차르트의 종교음악 작곡에 큰 영향을 끼친 헨델의 영향력이 잘 드러나는 곡입니다. 

3.부속가 (Sequentia): 총 6개의 세부 곡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대중들에게 인지도가 높은 레퀴엠의 멜로디 상당수가 이 부속가의 세부악장들입니다. 
 1) 진노의 날(Dies irae): 모차르트의 레퀴엠에서 ‘라크리모사’와 함께 가장 유명한 곡입니다. 오케스트라의 격정적인 반주 위에서 합창단은 종말의 날을 노래합니다.

모차르트-레퀴엠 중 <진노의 날>

 2)놀라운 나팔소리(Tuba mirum): 트럼본 솔로로 시작되는 곡입니다. 처음에는 평화로운 장조 멜로디로 진행이 되지만 독창자들이 등장하면서 분위기는 달라집니다.
 3)무서운 대왕이여(Rex tremendae): 현악기들의 부점 리듬으로 시작하며 합창단이 “Rex(대왕)”를 부르짖습니다. 
 4)기억하소서(Recordare): 계속 무겁고 치열하게 진행되던 곡에서 잠깐의 휴식을 취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F장조의 곡이며 전반적으로 서정적이고 온화한 곡이지만 가끔 긴장감을 주기도 합니다.
 5)사악한 자들이 혼란스러울 때(Confutatis): 온화했던 분위기의 Recordare와 달리 남성 합창단이 중심이 된 격렬한 부분과 여성 합창단이 중심이 된 맑고 차분한 부분이 극단적인 대조를 이루는 곡입니다. 죽음의 공포가 시시각각 목을 죄어오는 모차르트의 절박한 심리가 드러나는 곡입니다.(영화 아마데우스에서 이 부분을 극적으로 묘사를 했죠)
 6)눈물의 날(Lacrimosa): 부속가의 마지막 악장으로 모차르트 레퀴엠 전체에서 가장 유명한 곡이기도 합니다. 자신의 죽음이 피할 수 없음을 받아들인 모차르트의 슬픔이 그대로 묻어나오는 곡으로 모차르트는 이 라크리모사의 8마디까지 작곡한 뒤 숨을 거두고 맙니다. 
미완성으로 남겨두었다는 점에서 곡의 전개에 대한 논쟁이 많은 곡으로 가장 큰 논쟁은 아멘 푸가의 삽입 여부입니다.
1960년대에 모차르트가 만든 ‘아멘’ 푸가에 대한 스케치가 새로 발견되었는데 이를 두고 음악학자들의 분석 결과 라크리모사의 후반부에 사용하려던 스케치가 확실하다는 의견과 옆에서 지켜본 쥐스마이어가 사용하지 않은 것은 레퀴엠을 위한 스케치가 아니거나 모차르트가 당초 계획했지만 최종적으로 폐기한 스케치라는 의견으로 대립 중입니다.

모차르트-레퀴엠 중 <라크리모사>. 윌리엄 크리스티 지휘. 아멘 푸가가 없는 전통의 쥐스마이어 판본 연주입니다.
모차르트-레퀴엠 중 <라크리모사>.랄프 오토 지휘. 레빈 판본으로 아멘 푸가가 들어간 연주입니다.

 


4. 봉헌송(Offertorium): 흔히 모차르트라 라크리모사 8마디까지만 작곡한 것으로 많이 알려져 있지만 이 곡도 성악 파트 및 베이스 라인의 스케치는 만들어두었고 이 스케치를 바탕으로 쥐스마이어가 곡을 완성했습니다.
 1)주 예수 그리스도(Domine jesu christe) - 2)찬양과 기도의 제물(Hostias)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5. 거룩하도다(Sanctus) - 6.찬미받으소서(Benedictus): 여기서부터는 아예 쥐스마이어의 온전한 창작 파트로 레퀴엠의 분위기와 맞지 않게 밝은 곡이라고 비판하는 의견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 곡 나름의 매력을 인정하는 의견도 많으며 모차르트가 숨을 거두기 전에 곡의 전개에 대한 지시사항이 있었을 것이라 추측하기도 합니다.


7.신의 어린 양(Agnus Dei): 역시 쥐스마이어의 온전한 창작 파트입니다. 하지만 화성이나 전개 등의 작곡법이 모차르트스러우면서도 완성도가 뛰어나기 때문에 쥐스마이어가 모차르트의 이전 종교곡들을 참고했거나 아니면 모차르트의 알려지지 않은 스케치 혹은 생전 지시가 있었다고 보는 학자들도 존재합니다.

 

8.영성체송-영원한 빛(Communio-Lux aeterna): 레퀴엠의 대미를 장식하는 마지막 곡으로 앞서 나온 Offertorium과  Sanctus-Benedictus와는 정반대로 새로운 창작 없이 Introitus와 Kyrie의 멜로디를 그대로 재활용했습니다.
쥐스마이어와 콘스탄체는 이러한 재활용이 모차르트의 죽기 전 지시였다고 증언했습니다. 모차르트가 애초에 이런 마무리를 의도했던 것인지 아니면 살아서 레퀴엠의 마무리를 완성하는게 불가능했던 작곡가의 어쩔 수 없는 ‘대안’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쥐스마이어 역시 자신의 작곡능력으로는 천재 작곡가의 미완성 대곡을 순수 창작으로 마무리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한계를 인정하고 수미상관식의 구조를 채택하였고 결과적으로 곡의 통일성을 부여한 선택이 되었습니다.


 레퀴엠의 위촉자
모차르트가 사후 신격화되며 당대 사람들 사이에서 생겨난 음모론, 그리고 거기에서 영감을 받는 푸시킨과 피터 셰퍼의 희곡, 결정적으로 이 희곡을 바탕으로 제작하여 1984년에 개봉한 영화 <아마데우스>에 의해 살리에리가 모차르트를 죽이기 위해 레퀴엠을 위촉하였고 쇠약해진 모차르트 옆에서 레퀴엠의 작곡을 종용하여 사망하고 말았다는 루머가 퍼져있습니다. 
그러나 서론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실제로 곡의 의뢰자는 살리에리가 아니라 발제크 백작입니다. 발제크 백작이 작곡을 의뢰한 이유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아내를 위한 레퀴엠을 작곡하기 위함이었고 이상한 의뢰인을 통해 익명으로 작곡을 의뢰한 이유는 그가 남의 곡을 받아 자신의 이름으로 발표하는 악취미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자신의 행동을 비밀로 유지하기 위해서 작곡가들에게 거액의 사례금을 지급하여 입막음을 한 것입니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쥐스마이어에 의해 최종적으로 완성된 레퀴엠의 원본 악보는 1792년 발제크 백작에게 전달되어 1793년에 ‘발제크 백작’ 작곡의 레퀴엠으로 연주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미 빈에서는 이 곡의 부분 연주회는 물론 전곡 초연까지 진행된 뒤였으며 콘스탄체는 악보의 사본을 여러 사람들에게 공유하며 출판까지 기획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결국 발제크 백작이 자신의 이름으로 연주회를 열 시기쯤에는 이 작품이 실은 모차르트 작곡의 -자신을 위한- 레퀴엠이라는 진실이 파다하게 퍼져있는 상황이었고 발제크 백작의 시도는 수포로 돌아가고 맙니다.



판본
모차르트의 레퀴엠은 모차르트가 겨우 절반 정도만 작곡을 완료하였고 남은 부분은 다른 사람이 작곡하였기 때문에 이 남은 부분의 처리를 어떻게 할 것인지에 관해 논쟁이 존재합니다.
우선 당대에 콘스탄체의 의뢰로 이 곡의 마무리를 담당했던 쥐스마이어의 판본이 가장 유명하며 일반적입니다. 레퀴엠 전곡 초연때도 당연히 이 판본으로 진행했고 19세기~20세기 초까지의 모든 연주는 이 판본으로 진행되었습니다.
그러나 쥐스마이어의 판본은 그만큼 많은 비판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그가 작곡가로 이렇다할 업적을 남기지 못하였으며 그가 작곡한 뒷부분은 투박한 오케스트레이션과 잘못된 화성, 상투적인 진행 등으로 곡의 완성도가 터무니없이 뒤떨어진다는 비판이었습니다.  따라서 20세기 중반에 나온 바이어 판본을 시작으로  레빈, 드루스, 몬더 등 여러 대체 판본이 등장했습니다.
이렇게 나온 판본들은 주로 욕을 많이 먹은 상투스-베네딕투스 파트를 수정하고 라크리모사 후반부에 아멘 푸가를 삽입하는 식의 수정을 진행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모차르트의 생전에 작곡을 보조해주며 최후를 옆에서 지켜보았던 쥐스마이어 판본의 정통성은 여러 도전자의 등장에도 그 위상을 내어주지 않았으며 현재도 쥐스마이어 판본이 가장 많이 사용됩니다. 심지어 그 다음으로 많이 사용되는 바이어 판본도 본질적으로 쥐스마이어 판본을 바탕으로 모차르트스럽지 않다고 판단한 일부 오케스트레이션과 화성의 수정 정도에 집중을 한 판본입니다.  
결국 대체 판본들은 이미 사람들에게 익숙해진 쥐스마이어 판본을 밀어낼 만큼의 완성도를 보여주지는 못했다는 감상자들의 냉정한 평가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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