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분석/인상파 음악, 현대 음악

전쟁이 낳은 음악의 대서사시 - 쇼스타코비치 교향곡〈레닌그라드〉

교클 2022. 2. 28. 2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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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mitri Dmitriyevich Shostakovich - Symphony No.7 in C Major Op.60 〈Leningrad〉

Дмитрия Дмитриевича Шостаковича - Симфония № 7  до мажор соч. 60 «Ленинградская»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1906-1975)는 20세기의 가장 유명한 클래식 작곡가 중 하나이자 당대 소련의 자랑이었던 국가적인 인재였습니다. 하지만 그의 삶은 결코 평화롭지는 않았는데 일생동안 스탈린에 의한 두 번의 숙청의 칼날을 가까스로 피했고 또 그 사이에는 수천만 명이 죽은 제2차 세계대전이 있었습니다.
오늘 소개할 교향곡 제7번 〈레닌그라드〉는 이 거대한 전쟁의 한복판에서 작곡한 곡입니다.

쇼스타코비치가 30대 중반이던 41년 독일과 소련 사이에 전쟁이 일어납니다.
1939년부터 시작해 영국을 뺀 유럽을 싹 쓸어버린 히틀러가 마침내 소련 땅에 욕심을 내고 총공격을 시작한 겁니다. 
파죽지세로 진격한 독일군은 소련 제2의 도시 레닌그라드(현 상트페테르부르크)를 완전히 포위하여 말려 죽이려는 작전을 시행하였고 레닌그라드는 독일군에 포위당한 채 끊임없는 공습과 식량부족이 겹쳐 1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죽어가게 됩니다. 이 레닌그라드 봉쇄는 거의 900일에 달했습니다.
쇼스타코비치는 전쟁 발발 당시 이 도시에 거주중이였는데 레닌그라드가 전쟁터가 되자 의용 소방대원으로 복무를 합니다. 〈레닌그라드〉 교향곡 역시 이 시기에 작곡을 시작하였습니다.
쇼스타코비치는 소련의 국가적인 인재였기 때문에 소련 정부는 포위망이 일시적으로 뚫렸을 때 그를 후방지역인 쿠이비셰프(현 사마라)에 우선순위로 피신시켰습니다.  레닌그라드 교향곡은 최종적으로 이 곳에서 완성됩니다.

 

이후 쇼스타코비치가 완성한 〈레닌그라드〉 교향곡은 ‘나치에 대항하는 소련과 연합국의 저항과 의지’라는 평을 받으며 미국 등 연합국들에서 인기를 얻습니다. 
쇼스타코비치는 독일군에 포위당한 체 적과 처절한 투쟁을 벌이고 있던 레닌그라드에 이 곡을 헌정합니다. 그리고 이 곡이 소련과 연합국에서 한창 인기를 모으던 중 이 교향곡을 헌정 받은 레닌그라드에서도 연주하자는 아이디어가 나옵니다. 
소련 정부는 선전용으로 매우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하고 속히 진행하도록 지시했습니다. 
물론 이는 모두가 생각하는 것처럼 매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당시 레닌그라드는 먹을 것이 없어서 굶어죽는 사람이 속출한 데다 싸울 수 있는 사람은 전부 전선에 끌려가서 연주자를 구할 수가 없었습니다. 심지어 이 교향곡은 80분에 육박하는 긴 연주시간과 거대한 편성에 상당한 연습을 요하는 어려운 곡이었습니다.
해결책으로 소련 정부는 징집된 오케스트라 단원들을 일단 전선에서 빼온 뒤 연주회를 준비시켰습니다. 당연히 악기 들 힘도 없을 만큼 오랫동안 굶은 데다 한동안 악기를 잡아본 적도 없던 단원들이 이런 난곡을 연주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심지어 리허설 중에 아사해버린 단원들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내 이 곡을 레닌그라드에서 연주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길거리에 굶어 죽은 사람이 즐비한 극한의 상황에 도저히 클래식 음악이 귀에 들어오지 않을 때였을 듯싶지만 놀랍게도 수많은 사람들이 공연을 보러 연주회장에 옵니다. 
이 연주회는 도시 곳곳에 송출이 되어 시민들의 저항의지를 다시 일으켜 세웠고 포위하고 있던 독일군에도 확성기로 송출함으로서 독일군의 사기까지 꺾어놓았습니다. 

의용 소방대원 쇼스타코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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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의 분석

작곡 연도: 1941년 12월 27일 완성
작곡 장소: 레닌그라드 → 쿠이비셰프
초연 연도: 1942년 3월 5일
초연 장소: 모스크바(Moscow)
초연자: 사무일 사모스트(Samuil Samosud), 모스크바 국립대극장 관현악단(Bolshoi Theatre Orchestra)

 

전곡 연속 연주 - 발레리 게르기예프 지휘, 상트페테르부르크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연주


사실 쇼스타코비치의 진짜 의도와는 다르게 받아들여지는 부분이 많은 곡입니다.
우선 이 곡의 제목부터가 쇼스타코비치가 직접 명명한 제목이 아닙니다. 레닌그라드라는 제목은 전쟁 당시 소련의 프로파간다로 탄생한 재목인데 이 곡의 작곡 당시 상황이 워낙 드라마틱했기 때문에 대중들에게 쉽게 받아들여져서 정착되었습니다.
쇼스타코비치는 각 악장에도 1악장은 "전쟁", 2악장은 "회상", 3악장은 "조국의 광야", 4악장은 "승리"라는 부제를 붙였지만 이후 삭제하기도 했습니다.
거기에다 쇼스타코비치의 회고록 ‘증언’에 의하면 이 교향곡은 소비에트 정부가 선전한 “나치의 저항에 맞서는 소련 인민들의 의지”가 아니라 "스탈린이 철저히 파괴하고, 히틀러가 마지막 타격을 가한 레닌그라드를 애도한 곡" 이라고 언급했습니다.
즉, 이 곡을 나치의 공격과 그에 대항하는 인민들의 저항과 같은 관점으로 곡을 바라보는 건 엄밀히 말하면 작곡가의 의도와는 다르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음악을 어떤 의도로 감상하는가는 오로지 감상자의 마음에 달려있는 거고 곡 자체가 (작곡가의 의도와는 다른) 나치의 폭력에 대항하는 소련 인민들의 저항이라는 관점으로 감상해도 전혀 어색하지는 않습니다.

 


1악장: 다 장조, Allegretto

마리스 얀손스 지휘 - 레닌그라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연주(현 상트 페테르부르크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이하 동일

소나타 형식인데 엄청나게 길어져서 연주 시간 25분을 넘어가는 거대한 악장입니다.
이 악장에서 가장 유명한 부분은 제1 주제가 연주된 후 뒤이어 10분이 넘는 시간동안 집요하게 반복되는 ‘침략’ 주제인데 매우 조용하게 시작해서 여러 악기들이 점차 합세하여 규모가 커지는 전개방식이 서서히 레닌그라드로 진군해 오는 독일군을 연상시키는 부분입니다. 
또한 이 부분은 라벨의 〈볼레로〉의 전개방식을 그대로 따온 것인데 이에 대한 쇼스타코비치의 대답은 “뭐 그러라고 하지. 전쟁이 내 귀에는 이렇게 들리는 걸.”
이 ‘침략’주제는 아주 서서히 고조되다 어느 순간 단조로 전환하여 격렬하게 전개되는데 이는 독일군과 소련군의 본격적인 전투를 연상케 하고 이 와중에 ‘침략’주제가 다시 장조로 전환되기도 하며 혼란스럽게 이어지다 금관과 저음 현악기들에 의해 고조되는 굉장히 처절하면서 장엄한 곡의 하이라이트 부분에 도달합니다.(음원 16:50초 부근)
이후로는 격렬한 분위기가 완전히 반전되어 처음의 평화로운 제1 주제를 다시 연주하고 다시 침략의 주제가 반복될 듯 말 듯 한 분위기를 보이다 마무리됩니다.

 


2악장: Moderato (poco allegretto)

전형적인 3부 형식의 스케르초 악장으로 쇼스타코비치 특유의 개성이 나타나지만 크게 특이한 점은 없습니다.

 


3악장: Adagio

처절했던 1악장과 정신없는 2악장 이후에 나온 느린 악장인데 쇼스타코비치는 이 악장을 레닌그라드의 황혼과 네바 강을 묘사했다고 설명했습니다. 길이도 15~20분 정도로 제법 길어서 강렬한 1악장과 2악장으로 피곤해진 청중들이 쉬어갈 수 있는 악장입니다.

 


4악장: Allegro non troppo

다시 한 번 전쟁을 묘사하는 악장입니다. 조용하게 시작하지만 어느덧 다시 전쟁을 연상시키는 무겁고 강렬한 음악이 등장합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분위기가 약간 바뀌면서 피치카토와 함께 현악기들이 인상적인 멜로디를 연주하는데 이 멜로디는 브라운 아이드 걸스의 〈Sixth Sense〉 등 여러 곳에서 인용되어 꽤 유명해졌습니다.(5:09초 부근)
이후로는 완전히 곡이 잦아들어서 조용히 진행되다 다시 희망찬 분위기로 서서히 고조되며 최후에는 승리의 멜로디를 강렬하게 연주하면서 대단원의 막을 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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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닌그라드의 시민들처럼 침략자의 군대에 저항하는 우크라이나 시민들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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