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분석/국민악파 음악

아라비안 나이트의 음악화 - 림스키코르사코프의 〈세헤라자데〉

교클 2024. 2. 26. 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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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kolai Andreyevich Rimsky-Korsakov - 〈Scheherazade〉

Никола́й Андре́евич Ри́мский-Ко́рсаков - 〈Шехеразада

 

림스키-코르사코프, 1844-1908


이 곡은 러시아 5인조의 일원인 국민악파 작곡가 니콜라이 림스키-코르사코프를 대표하는 곡 중 하나입니다.
화려하고 세련된 음향이 돋보이는 곡으로 관현악의 대가로 평가받았던 림스키-코르사코프의 솜씨를 유감없이 발휘한 대작이라고 할 수 있죠.

이 곡의 배경은 아라비안 나이트라는 이름으로 유명한 천일야화(千一夜話, One Thousand and One Nights)입니다.

본격적인 곡의 설명에 들어가기 이전에 이 아라비안 나이트의 스토리를 간단하게 쓰자면...
“옛날 옛적 어느 나라에 샤리아르라는 왕이 있었다. 젊었지만 어질고 지혜로운 왕이었던 그는, 어느 날 왕비가 다른 남자와 간통하는 장면을 목격하고는 배신감에 격노하여 왕비를 처형시켜 버린다. 
하지만 큰 충격을 받은 왕은 이후로 여자를 격렬히 증오하게 되어 매일 밤마다 처녀를 데려다 동침한 후 이튿날 아침에 죽여버리는 행위를 반복하게 된다. 
오랫동안 이런 상황이 이어지며 나라의 처녀들이 다 사라져버릴 지경에 이르자 한 대신의 딸 세헤라자데가 본인이 왕의 신부가 되겠다며 자진해 나선다. 아버지는 사실상 죽으러 가겠다는 딸의 선언에 당연히 극구 반대했지만 딸의 무적고집에 결국 눈물을 머금고 승낙하게 된다.

그렇게 들어간 왕의 침실에서 그녀는 샤리아르 왕과 관계를 맺은 후 늘 하던 대로 처형시켜 버리려는 왕에게 자신이 재미있는 이야기를 알고 있다며 죽기 전에 이 이야기만 들어달라고 간청한다. 승낙한 왕은 이윽고 그녀가 풀어주는 수많은 이야기들에 빠져들어 처형을 미루고 미루다 무려 천 하룻밤(1001일)을 함께 보내게 된다. 
마침내 세헤라자데의 마지막 이야기가 끝났을 때 샤리아르 왕은 가슴 속에 있던 분노도 모두 사라지고 세헤라자데에 대한 사랑만이 남아 그녀와 정식으로 혼례를 올리고 세헤라자데는 왕비가 되어 행복하게 살게 되었다.”

 

Marie-Éléonore Godefroid의 작품 - 세헤라자데와 샤리야르(Scheherazade and Shahrya)


이 중동의 구전 설화는 이후 유럽으로 건너와 큰 인기를 끌었으며 림스키코르사코프도 이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여 명곡을 만들었습니다.

 

사실 이 작품을 감상하는데 직접적으로 아라비안 나이트의 줄거리를 알고 있어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작곡가는 이 작품에서 직접적으로 아리비안 나이트에 수록된 이야기를 직설적인 음악으로 묘사하기보단 이야기가 주는 오리엔탈적이고 관능적인 느낌을 중점으로 묘사하였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처음에는 아예 각 악장에 붙여놓은 부제들조차 없이 그냥 ‘프렐류드, 발라드, 아다지오, 피날레’ 로만 명명했었고 훗날 개정판에서 기껏 붙여놓은 부제들을 다시 지워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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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의 분석
작곡연도: 1888년
초연연도: 1888년 10월 28일
악기 구성: 
목관-피콜로, 플루트2, 오보에2(제2오보에는 잉글리시 호른을 겸함), 클라리넷2(A와B♭), 바순2
금관-호른4, 트럼펫2, 트롬본3, 튜바
타악기-팀파니, 큰북, 작은북, 심벌즈, 탬버린, 트라이앵글, 탐탐
현악기-하프, 현 5부(1&2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더블베이스)

림스키코르샤코프-세헤라자데 전악장. 알랭 알티놀뤼 지휘, 프랑크푸르트 라디오 심포니 오케스트라 연주


이 곡은 일단 4개의 곡들이 모여 하나의 작품을 구성하는 모음곡이기는 한데 4악장 구성에다 3악장이 느린 악장으로 구성되어 있는 등의 특징으로 인하여 교향적 모음곡(교향곡의 형식을 차용한 모음곡)으로 파악합니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관현악법의 대가 림스키코르사코프의 작곡능력이 잘 발휘된 곡인만큼 연주 난이도도 높은 편에 속하는 작품입니다.

1악장: The Sea and Sinbad's Ship(바다와 신드바드의 배)
Largo e maestoso– Lento– Allegro non troppo– Tranquillo, (e minor→E Major)

림스키코르사코프-세헤라자데 1악장. 세이지 오자와 지휘,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 연주(이하동일)

금관과 저음 현들이 묵직하고 위압적인 멜로디를 연주하면서 시작합니다. 이는 포악한 샤리아르 술탄을 상징하는 라이트모티프(특정 인물을 상징하는 테마 멜로디)입니다.
뒤이어 하프의 아르페지오와 동시에 바이올린 독주가 신비로운 멜로디를 연주하며 등장하는데 이는 세헤라자데를 상징하는 라이트모티프입니다. 이 두 개의 라이트모티프는 곡 전체에서 꾸준히 등장하며 곡을 하나로 묶어주는 작품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두 개의 라이트모티프가 지나간 후에 본격적으로 세헤라자데가 풀어놓는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처음 들려주는 이야기는 아라비안 나이트에서 유명한 이야기인 신밧드의 모험입니다. 바닷물이 넘실대는 듯한 음악으로 가끔씩은 거칠고 가끔씩은 잔잔해지는 바다의 풍경이 머릿속에 그려집니다.


2악장: The Story of the Kalendar Prince(칼렌다 왕자의 이야기)
Lento – Andantino – Allegro molto – Vivace scherzando – Moderato assai – Allegro molto ed animato (B minor) 

림스키코르사코프-세헤라자데 2악장

주제와 변주 형식의 곡입니다. 제목을 보면 칼렌다르 왕자라는 인물의 이야기를 풀어놓는 것 같은데 이런 이야기가 아라비안 나이트에 실제로 존재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위에서 언급했다시피 이 작품은 아라비안 나이트의 이야기들을 구체적으로 묘사한 음악이 아닙니다.)
우선 바이올린이 세헤라자데의 주제를 연주하며 시작합니다. 이윽고 바순이 등장하며 이슬람풍 멜로디를 연주하며 두 번째 이야기를 풀어놓기 시작합니다. 


3악장: The Young Prince and the Young Princess(젊은 왕자와 젊은 공주)
Andantino quasi allegretto – Pochissimo più mosso – Come prima – Pochissimo più animato (G major)

림스키코르사코프-세헤라자데 3악장

이 곡을 교향곡으로 본다면 느린 악장 역할을 하는 곡으로 A-B-A의 3부 형식입니다. 4개의 악장들 중에 구조적으로는 가장 단순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마치 젊은 왕자와 공주의 연애를 묘사하는 듯한 아름답고 달콤한 곡입니다. 


4악장: Festival at Baghdad - The Sea - The Ship Breaks against a Cliff Surmounted by a Bronze Horseman(바그다드의 축제 - 바다 - 청동 기마병으로 가득한 절벽에 부딪친 배)
Allegro molto – Lento – Vivo – Allegro non troppo e maestoso – Tempo come I (E minor→E major)

림스키코르사코프-세헤라자데 4악장

제목이 복잡한 것처럼 곡의 구조도 상당히 복잡한 곡입니다. 빠르게 전개되는 와중에 이전 악장들의 주제들이 계속 등장하면서 정신없이 휘몰아칩니다. 
처음에는 술탄의 주제와 세헤라자데의 주제가 변형되어 등장한 후에 흥겨운 바그다드의 축제가 시작됩니다.
축제의 멜로디가 흐르는 도중에 3악장의 멜로디도 섞여들며 점점 음악이 거칠어지기 시작합니다.
이후로는 1악장에서 나왔던 바다의 선율이 더욱 거칠게 등장하고 뒤이어 2악장과 주제들도 잠깐씩 등장하며 점점 고조되다 마침내 현과 금관의 격렬한 연주로 배가 난파되는 상황이 펼쳐집니다.
이후 폭풍이 치던 바다도 잦아들고 세헤라자데의 주제가 다시 한 번 연주되며 뒤이어 술탄의 주제와 섞이며 진행되는데 이는 이야기가 마침내 끝에 다다랐다는 것을 상징합니다. 마지막에는 장조로 전환되며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됩니다.

 



기타
1.곡의 배경인 천일야화 이야기는 인도-페르시아 쪽에서 유래하였습니다. 이야기에서 구체적인 나라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아마도 현재 이란 위치에 있는 나라가 배경일 것입니다.

2.1909년에는 이 곡의 1,2,4악장을 이용하여 발레도 제작되었습니다. 그만큼 이 곡의 분위기가 발레 음악을 떠올리게 하는 면이 있습니다. 같은 이유로 피겨 스케이트에서도 자주 선곡되는 음악이기도 합니다. 여러 선수들이 이 음악을 가지고 연기를 하였고 한국의 김연아도 2008년 대회 출전 당시 이 음악을 선곡하여 곡의 인지도도 높아진 적이 있습니다.

2008 ISU 그랑프리파이널 프리에서 연기한 김연아의 '세헤라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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