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분석/낭만파 음악

혹평을 뒤집은 곡 - 차이코프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 라장조

교클 2021. 6. 14. 0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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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yotr Ilyich Tchaikovsky - Violin Concerto in D Major Op.35

 

차이코프스키(1840~1893)

 

차이코프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은 흔히 4대 바이올린 협주곡이라고 하는 곡(베토벤, 브람스, 멘델스존, 차이코프스키) 중에 하나인데 음악성으로 봐도 매우 뛰어나지만 특히 대중적인 인기로는 네 곡 중에서도 가장 높은 협주곡입니다. (제 경험에 의하면 주위 사람들에게 클래식을 추천해 줄 때 1악장 중간 부분에 나오는 강렬한 멜로디를 들려주면 거의 좋은 반응을 얻더라구요. 곡 제목을 묻는 사람도 많았고...)

 

이 곡은 상당한 난이도를 자랑하는 곡임에도 불구하고 워낙 인기가 좋은 곡이기 때문에 현대의 바이올린 프로 연주자들 중 이 곡을 연주해 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정도로 바이올리니스트라면 한 번 쯤은 꼭 거쳐 가야 하는 작품입니다.

실제로 인터넷 검색을 해보면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바이올리니스트들은 거의 전부 이 곡을 연주한 음원과 영상을 찾아볼 수 있을 정도입니다.

 

이 곡은 차이코프스키가 1879년에 작곡한 작품입니다. 이 시기는 차이코프스키가 결혼에 실패하고 자살시도까지 했다 폰메크 부인의 도움으로 겨우 심신을 추스르고 다시 작곡에 매진하던 시기입니다.

곡을 완성한 차이코프스키는 당대의 명연주자이자 전설적인 바이올린 교육자였던 레오폴드 아우어 교수에게 헌정하고자 마음먹고 초연을 부탁하였습니다.

하지만 아우어는 이 곡에 대해 부정적으로 평가했습니다. 연주하기 난해한 여러 부분들 때문에 차이코프스키가 바이올린 작곡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고 생각했고 결국 초연을 거부했습니다.

러시아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가 연주 불가 판정을 내린 이상 차이코프스키도 별 수 없이 기껏 작곡한 곡을 몇 년 동안 묻어둘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묻혀있던 이 곡에 드디어 빛을 받기 시작합니다. 모스크바 출신의 바이올리니스트이자 라이프치히 음악원 교수였던 아돌프 브로드스키가 이 곡을 보고는 극찬을 하며 내가 연주하겠다고 나섰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곡이 좋은 평가를 받는 데는 좀 더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빈에서 지휘자 한스 리히터와 함께한 초연은 온갖 악평을 받았습니다. 차이코프스키 음악 특유의 러시아 냄새가 청중들과 평론가들에게 익숙지 않았기도 했고 연주하기 무척 어려웠던 이 곡을 바이올리니스트가 아직 다 소화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당대의 유명한 평론가(겸 독설가) 한슬리크는 초연을 관람한 후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천하고 품위없는 얼굴만 봤고 거칠은 고함소리만 들었으며, 싸구려 보드카의 냄새만 맡았다. 프리트리히 피셔는 짜임새없는 그림을 비평할 때 '보고 있노라면 냄새가 나는 그림이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차이콥스키의 이 곡은 음악작품에도 들어서 냄새가 나는 작품이 있을수 있다는 두려운 생각을 우리에게 처음으로 알려주었다."(ㅎㄷㄷㄷ)

 

이런 처참한 반응을 받았음에도 브로드스키는 이 곡의 진가를 언젠가는 사람들이 알아줄 것이라며 이곳 저곳에서 연주하고 다녔고 마침내 악평을 뒤집고 열광적인 반응을 이끌어냈습니다. 이 곡이 대중들로부터 엄청난 인기를 끌자 나중에는 곡에 대해 혹평했던 아우어 교수마저 본인의 말을 번복하고 이 곡의 가치를 인정하여 연주회에 올리는 것은 물론 제자들에게도 이 곡을 가르치게 됩니다.

그리고 차이코프스키는 이 곡의 제 2의 아버지라고도 할 수 있는 브로드스키에게 이 협주곡을 헌정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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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의 해설

 

작곡 연도: 1879

작곡 장소: 스위스 쥬네브의 호반 클라렌스

헌정: 아돌프 브로드스키

초연 연도: 1881124

초연 장소: 오스트리아 빈

초연자: 아돌프 브로드스키(바이올린), 한스 리히터(지휘)

 

 

정경화 연주, 앙드레 프레빈 지휘,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이하 동일)

1악장: Allegro Moderato

소나타 형식. 곡 중반부에 나오는 카덴차를 중심으로 대칭 형태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서주를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며 메인 주제를 제시합니다. 이후 바이올린이 등장하며 다채롭게 곡을 전개해 나가기 시작합니다. 곡이 점점 고조되다 마침내 클라이맥스에 도달하며 오케스트라가 일제히 연주하는 멜로디가 폭발하는데 이때 등장하는 강렬한 멜로디는 이 곡의 최고 감상 포인트입니다. 이 부분은 매우 매력적이어서 여러 대중매체에 많이 쓰이기 때문에 대중적으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이 멜로디가 조성을 바꿔서 한 번 더 나온 이후 기나긴 카덴차(협주곡의 독주자 혼자서 연주하는 파트)가 시작됩니다. 카덴차가 끝난 이후에는 다시 초반부~클라이막스 직전까지의 전개로 진행되다 클라이막스 부분을 연주할 것 처럼 하다 끊어버리는 반전(?)을 보여준 뒤 코다로 들어가서 열광적으로 끝이 납니다.

 

 

 

2악장: Canzonetta Andante

A-B-A3부 형식. 작곡가가 칸초네타라고 칭한 느린 악장인데 칸죠네타는 작은 성악곡 혹은 기악곡을 뜻합니다.

차이코프스키의 장기인 러시아적인 우수감이 깃들어있는 느린 악장입니다. 마지막에는 3악장과 이어서 연주하는 느낌이 들도록 애매하게 끝을 맺습니다.

사실 2악장은 처음에는 전혀 다른 곡이었습니다. 차이코프스키가 곡을 다 작곡한 후에 2악장이 아무리 생각해봐도 곡의 전체적인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다고 생각해서 2악장을 새로 작곡한 것입니다. 파기된 2악장은 소중한 곳의 추억(Souvenir d'un lieu cher)Op.421번곡 명상곡으로 재사용되었습니다.

 

 

 

3악장: Allegro vivacissimo

자유로운 소나타 형식의 악장입니다. 애매하게 끝나는 2악장에 이어 갑작스러운 오케스트라의 합주로 시작하며 2악장의 애수어린 분위기에서 완전히 달라져 러시아 전통 춤곡을 연상시키는 흥겨운 음악으로 변합니다. 중간에 살짝 서정적인 부분이 나오지만 이내 다시 빠르고 흥겨운 음악으로 돌아오며 마지막에는 점점 고조되며 대단원의 막이 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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