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분석/인상파 음악, 현대 음악

현대음악의 전주곡 – 드뷔시의 〈목신의 오후에의 전주곡〉

교클 2023. 1. 2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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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aude Debussy - Prélude à l'après-midi d'un faune (Prelude to the Afternoon of a Faun)

 

 

“나른한 여름날 오후 나무 그늘에서 졸고 있던 목신 판은 아련한 꿈 속 같은 상태에서 나뭇가지 사이로 목욕하는 요정을 발견한다.
꿈인지 현실인지 잘 구분할 수 없지만, 저편의 가물거리는 자태에 마음이 끌려 샘가에서 보았던 한 쌍의 요정을 떠올린다. 목신은 어떤 힘에 이끌리듯 달려가 두 요정을 그대로 품에 안아 장미 넝쿨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헝클어진 그녀들의 머리카락에 입을 맞출 때, 몽롱한 관능적 희열이 온 몸에 퍼진다. 
그러나 환상의 요정은 어디론가 사라진다. 밀려오는 권태를 망연히 바라보며 판은 에로틱한 몽상을 해보기도 하고 한낮의 작렬하는 태양을 향해 입을 벌려 넋을 잃기도 하고 갈증을 느끼며 모래 위로 쓰러진다. 그리고 판은 또다시 오후의 고요함과 그윽한 풀냄새 속에서 잠들어버린다.” 

 

 

〈목신의 오후에의 전주곡〉을 이용하여 니진스키가 제작한 발레 《목신의 오후》 초연 포스터.


〈목신의 오후에의 전주곡〉은 프랑스의 인상주의 작곡가 클로드 드뷔시가 프랑스 시인 말라르메의 시 《목신의 오후》에 영감을 받아 작곡한 곡이며 그가 인상주의라는 새로운 음악 장르의 개척자로 인정받은 계기가 된 작품입니다.
목신의 오후 전주곡은 온음음계, 5음음계 등 기존 서양음악에서 사용하지 않던 음계들과 하프와 호른, 목관 등에 높은 비중을 둔 독특한 관현악법으로 만들어낸 색채감과 몽환적인 분위기가 특징으로 웅장하고 거대한 규모와 사실적인 묘사를 중시한 기존 낭만파 음악과는 다른 그 순간의 주관적인 인상을 음악으로 표현한 인상주의 음악을 대표하는 곡이 되었습니다.
프랑스의 대표적인 현대 작곡가이자 지휘자인 피에르 불레즈는 “판의 피리가 음악에 새로운 숨결을 불어넣었다”며 현대음악의 시작이라는 평을 했습니다. 이 곡은 그만큼 음악사에서 중요한 곡입니다.
원작 시의 작가 말라르메는 처음 드뷔시가 허락 없이 자신의 시로 곡을 만들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분노했지만 곡을 직접 들은 후에는 마음을 바꾸어 그에게 찬사를 보냈다고 합니다.

제목에 있는 ‘목신’의 한자는 木神(=나무의 신)이 아니라 牧神으로 여기서 牧은 칠 목입니다. 유목, 목축, 목장 등에 쓰이는 한자죠. 牧神은 목축의 신 정도로 해석할 수 있으며 그리스  신화의 판(파우누스) 신을 일컫는 말입니다. 

이 곡은 전주곡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는데 원래 전주곡이란 독립된 곡이 아닌 모음곡이나 오페라 등의 맨 앞에 사용되는 곡입니다. 드뷔시 역시 처음에는 전주곡과 간주곡, 종곡으로 이루어진 3악장의 곡으로 작곡할 계획이었지만 도중에 생각을 바꾸어 전주곡에다 모든 내용을 집어넣은 후 뒤의 두 악장은 작곡하지 않았습니다. 
인상주의 음악의 특성을 가장 잘 보여준 이 곡은 결국 인상주의 음악, 더 나아가 현대음악의  전주곡이 되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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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의 분석(여기서부터는 좀 어렵습니다. 가볍게 읽기를 원하시는 분은 넘기셔도 무방합니다.)

 

작곡 연도: 1892년 ~ 1894년 9월
초연 연도: 1894년 12월 22일
초연 장소: 프랑스 파리

 

목신의 오후 전주곡 - 성기선 지휘, 강남심포니오케스트라 연주


이 곡은 주제와 10개의 변주로 구성된 변주곡 형식입니다. 총 110마디로 이루어져 있으며 연주시간은 대략 10분정도입니다.
비록 악보에는 #이 4개 붙어있지만 이 곡을 E장조로 분석하면 곤란합니다. 이 곡은 반음계와 온음음계, 5음음계의 과감한 사용으로 인해 기존 장/단음계를 탈피한 곡이 되었습니다.
곡 특유의 뭔가 애매한, 몽롱하고 몽환적인 느낌은 이러한 새로운 음계들의 사용이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이 곡의 악기 구성은 플루트 3대, 오보에 2대, 잉글리시 호른, 클라리넷 2대, 파곳 2대, 호른 4대, 생발 앙티크(=크로탈, 작은 심벌즈처럼 생긴 음정이 있는 타악기로 이 곡에서는 E음과 B음으로 구성됨), 하프 2대, 현5부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악기 구성을 보면 일반적인 오케스트라의 편성과는 상당히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금관은 호른을 제외한 모든 악기들을 생략하였습니다. 반대로 생략된 악기가 없는 목관악기군은 상당히 높은 비중을 부여받았습니다.

타악기도 흔히 쓰는 팀파니와 같은 악기들은 모두 배재한 대신 생발 앙티크라는 잘 쓰지 않는 악기를 채택했으며 그 외에도 웬만한 대편성 관현악곡이 아닌 이상 쓰지 않는 하프를 두 대나 채택하였습니다.
그리하여 하프와 생발 앙티크, 그리고 목관악기의 독특한 조합은 몽환적인 분위기를 더욱 강하게 만들었습니다.

 


판의 팬플룻 소리를 의미하는 플루트 독주로 시작합니다. 플루트는 이 곡에서 판을 상징하는 가장 중요한 악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선율은 G음에서 C#음 사이를 반음계로 연주하며 조성을 모호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이 멜로디는 곡 전체에 걸쳐 오보에, 클라리넷 등으로 계속 옮겨가며 변주됩니다.
이외에도 이 곡은 리듬도 불규칙적이며 빠르기 변화도 자주 일어납니다.
언급한 여러 요소들이 합쳐져 곡의 전체적인 템포는 느림에도 마치 물이 흘러가는 듯한 유동적인 느낌을 감상자에게 강하게 부여합니다.

 

 

헝가리의 화가 팔 시네이 메르세의 1868년작 《Faun and Nymph》



기타
저는 이 곡의 제목에 약간의 불만이 있습니다.
이 곡의 제목인 목신의 오후에의 전주곡은 일본어 〈牧神の午後への前奏曲〉을 그대로 번역한 것입니다. 그 중 목신이라는 단어는 판(faune)을 의역한 단어인데 의역한 한자 牧神을 한글로 직역하여 목신이라고 적어놓으니 牧神이 아니라 木神(나무의 신)으로 해석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 때문입니다. 
이 곡을 처음 한글로 번역하였던 옛날(구한말 혹은 일제강점기)라면 몰라도 지금은 그리스 신화가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졌기 때문에 원제 그대로 ‘판의 오후 전주곡’이라고 부르는 게 오히려 더 쉽게 이해가 가능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미 목신의 오후 전주곡이라는 단어가 너무 깊이 뿌리박혔을 뿐만 아니라 곡 제목의 유래인 말라르메의 시 《목신의 오후》가 먼저 교정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리고 전에는 목신의 오후 ‘에의’ 라는 표현도 이상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표현 역시 일본어 제목을 그대로 번역하다 부자연스러운 문법이 된 것이라고 추측했는데 의외로 ‘~에의’라는 표현은 한국어 문법으로 존재하는 표현입니다. 따라서 〈목신의 오후에의 전주곡〉은 문법적으로 문제없는 제목입니다.
다만 조사 ‘에의’는 현재 실생활에서 잘 사용하지 않는 표현인 것은 사실이라 어색함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따라서 현재는 이 곡을 〈목신의 오후 전주곡〉으로 표기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클로드 드뷔시(1862-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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