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분석/인상파 음악, 현대 음악

남미의 사계-피아졸라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사계〉

교클 2024. 4. 6. 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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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tor Pantaleón Piazzolla - Cuatro Estaciones Porteñas(The Four Seasons of Buenos Aires)

 

아스트로 피아졸라(1921-1992). 1971년 사진. 함께 있는 악기는 반도네온


클래식 음악 중 〈사계〉라는 이름이 붙은 곡은 상당히 많습니다.
대표적으로 가장 유명한 클래식 음악 중 하나인 비발디의 〈사계〉가 있으며 그 외에도 하이든, 차이코프스키, 글라주노프 등의 작곡가들이 〈사계〉를 작곡하였습니다. 
물론 〈사계〉는 현대에도 많은 작곡가들이 지속적으로 작곡을 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소개할 〈사계〉는 아르헨티나를 대표하는 탱고 작곡가인 아스트로 피아졸라의 대표작 중 하나로 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항구의 사계절 풍경을 배경으로 하여 작곡한 곡입니다. 탱고, 재즈, 클래식이 절묘하게 결합하여 낭만적이고 이국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곡이죠.

사실 이 음악은 다른 작곡가의 〈사계〉들과는 다르게 처음부터 사계절이 하나의 곡으로 기획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1965년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여름’을 가장 먼저 작곡한 후 1969년에 나머지 세 곡을 작곡하였으며 4곡을 같이 연주한 최초의 공연에서는 가을→겨울→봄→여름 의 순으로 연주하였습니다. 

이 곡은 피아졸라의 원곡 그대로보다는 악기의 구성을 달리하여 클래식 앙상블에서 연주하는 경우가 훨씬 많습니다. 반도네온이라는 악기가 현재 연주자도 찾기 어려운 희귀악기라는 점도 있고 피아졸라가 클래식 쪽에서 많이 선호되는 작곡가라는 이유도 있습니다.
사실 피아졸라는 애초에 클래식을 탱고보다 더 먼저 배웠고 이후로도 클래식의 영향을 굉장히 많이 받은 탱고 작곡가이기 때문에 이 곡에서도 클래식 음악의 작곡기법이 많이 들어가 있습니다.


이 곡에는 정말 다양한 악기 구성들로 이루어진 여러 가지 편곡이 존재하는데 그 중 가장 유명한 편곡은 러시아의 바이올리니스트 기돈 크레머의 위촉으로 작곡가 데샤트니코프가 편곡한 버전입니다.
이 편곡판에는 곡 중간에 비발디 사계의 일부 멜로디가 대놓고 들어 있습니다. 기돈 크레머가 의뢰한 이유가 비발디의 사계와 같이 연주하는 팔계(Eight Seasons)라는 컨셉을 시도하기 위해서였으니 서로 관련 없던 두 곡에 연결성을 부여하기 위한 수단이었을 겁니다. 어찌 보면 정말 뜬금없이 비발디의 멜로디가 나오기 때문에 당황스러울수도 있지만 의외로 굉장히 피아졸라의 곡과 잘 어울리게 들어갔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데샤트니코프 편곡의 피아졸라 사계 중 여름에는 비발디의 ‘겨울’ 멜로디가 들어있으며 피아졸라의 ‘겨울’에는 비발디의 ‘여름’ 멜로디가 들어있다는 것입니다. 남반구의 계절은 북반구와 정반대라는 점에서 착안한 재밌는 인용이라고 할 수 있죠. 
피아졸라가 만일 살아있을 때 이 편곡을 들었으면 과연 어떤 반응을 보였을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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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의 분석

피아졸라-부에노스아이레스의 사계. 피아졸라 5중주단 연주(반도네온: 아스트로 피아졸라). 원작자 연주한 원곡 그대로의 편성입니다.

 

현재는 굉장히 다양한 악기구성들로 연주되는 곡이지만 피아졸라의 원곡은 자신이 이끌던 5중주단의 악기 구성인 바이올린, 피아노, 일렉기타, 더블 베이스, 그리고 피아졸라를 대표하는 악기라 할 수 있는 반도네온(아코디언의 일종)으로 이루어진 5중주 편성입니다.

각 계절은 5~7분 정도로 이루어져 있고 비발디의 곡과는 달리 각 계절이 단악장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사계 전곡을 연주한다면 25~30분 정도 걸립니다.

1.〈Verano Porteño〉(부에노스아이레스의 여름) 

피아졸라-부에노스아이레스의 사계. 기돈 크레머, 크레메라타 발티카 연주. 바이올리니스트 기돈 크레머 주도의 체임버 오케스트라 연주입니다. 이하 나머지 악장 동일

이 곡은 여름철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활기차고 관능적인 분위기를 표현합니다. 처음에는 여름철 특유의 나른한 분위기가 두드러지지만 이윽고 빠르고 리드미컬한 악절과 기교적인 솔로가 등장하며 여름의 열기가 느껴지는 강렬한 분위기가 인상적입니다. 반도네온은 열정과 향수를 불러일으키며 종종 존재감을 드러냅니다.

 


2.〈Otoño Porteño〉(부에노스아이레스의 가을) 

계절이 변함에 따라 음악의 분위기도 변합니다.가을 악장은 느린 템포와 잊혀지지 않는 멜로디로 이별의 우울함을 표현합니다. 
바이올린의 쓸쓸한 독주와 피아졸라 특유의 색채감은 긴장감과 그리움을 만들어내며 부에노스아이레스 항구의 가을의 씁쓸하고 달콤한 아름다움을 포착합니다.

 


3.〈Invierno Porteño〉(부에노스아이레스의 겨울) 

이번 악장은 이 도시의 춥고 황량한 겨울을 묘사합니다. 하지만 겨울의 황량함만을 묘사하는데 그치지 않고 열광적인 에너지의 폭발도 존재하며 그 둘의 뚜렷한 대조가 특징입니다. 
피아졸라 탱고의 독특한 하모니와 리듬은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예측할 수 없는 날씨와 겨울 분위기를 반영하여 예측 불가능함과 불안감을 전달합니다. 
곡의 마무리에 접어들면 기존의 탱고 분위기와 상당히 이질적인, 마치 캐롤을 연상시키는 서정적인 멜로디가 등장하며 의외로 따뜻한 분위기로 마무리됩니다.

 


4.〈Primavera Porteña〉(부에노스아이레스의 봄)

봄이 오면 음악은 새로운 에너지와 활력으로 터져 나옵니다. 이번 악장에서는 생동감 넘치는 리듬과 경쾌한 멜로디로 계절의 변화에 따른 재생과 활력의 감각을 담아냅니다. 피아졸라의 클래식과 탱고 요소의 융합은 봄의 정신을 반영하여 역동적이고 생동감 넘치는 부에노스아이레스 항구의 봄 풍경을 그려냅니다. 

 

전체적으로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사계'는 비발디의 〈사계〉에 경의를 표하는 동시에 열정적인 항구의 사람들, 다채롭게 변하는 계절 등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정수를 담아낸 명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피아졸라-부에노스아이레스의 사계. Nouvelle Philharmonie(바이올린, 피아노, 첼로 3중주) 연주


기타

1.피아졸라의 사계의 경우 흔히 사계 관련 곡들처럼 봄→여름→가을→겨울의 구성으로 연주하는 경우도 있지만 다른 순서로 연주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피아졸라의 〈사계〉 초연 때는 가을~여름 순서로 연주하였고 데샤트니코프의 편곡 판을 연주한 기돈 크레머는 여름~봄 순서로 연주하였습니다.

 

2. Porteño(포르테냐)는 스페인어로 ‘항구 도시 사람'이라는 뜻으로 항구 도시인 부에노스아이레스와 그 곳의 사람들을 뜻하는 단어로도 사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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