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분석/낭만파 음악

동양과 서양, 그리고 삶과 죽음 – 구스타브 말러 〈대지의 노래〉

교클 2023. 4. 23. 0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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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stav Mahler - Das Lied von der Erde(The Song of the Earth)

A Symphony for Tenor, Alto (or Baritone) Voice and Orchestra

 

구스타브 말러(1860-1911)


말러가 9번째로 작곡한 교향곡 〈대지의 노래〉는 독특하게도 중국의 시인들이 지은 한시들을 기초로 하여 작곡한 작품입니다.
1907~8년 당시 말러는 한스 베트게가 중국 한시들을 번역하여 출판한 의 《중국의 피리》라는 시집에 깊은 인상을 받아 이 곡을 작곡하게 되었습니다.
가사에 맞추어 〈대지의 노래〉는 동양풍 느낌이 물씬 풍기는 이국적인 분위기의 작품으로 탄생되었습니다. (물론 이 곡은 진짜 중국 전통 음악과는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이 곡에서 말러는 서양에서 흔히 말하는 ‘오리엔탈리즘’ 에 많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이 곡은 그가 9번째로 작곡한 교향곡이지만 9번 교향곡은 아닙니다.
말러는 그 유명한 ‘9번 교향곡의 저주’를 두려워해서 이 곡에 번호를 붙이지 않았다는 설이 유명합니다. 실제로 말러는 어떤 대작곡가도 9번 교향곡을 쓰고 나서 살아남지 못했다는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참고글:https://schoolclassical.tistory.com/6 )
마침 이 곡을 작곡할 시기에 안 좋은 일들이 연달아 터졌던(큰딸이 죽고, 본인은 심장의 이상이 있다는 판정을 받음. 곡의 내용이 이별, 죽음과 관련된 것도 당시의 개인사와 연관이 없지는 않을 것입니다.) 말러는 이 교향곡을 작곡하면 죽을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시달리다 한가지 좋은 아이디어를 생각해 내었습니다. 
자신이 새로 작곡한 9번째 교향곡에 9번이라는 번호를 붙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9번 교향곡을 작곡하면 죽는 저주이니 ‘9번’ 교향곡을 작곡하지 않으면 산다는 것이지요...
심지어 저주를 의식한 듯 말러는 제목에는 교향곡이라고 쓰지도 못하고 결국 부제에 살짝 교향곡이라고 적어놓기까지 합니다.

아무튼 결국 계획대로 9번째 교향곡을 작곡하고도 살아남는데 성공한 말러는 저주를 박살내는데 성공했다고 생각했는지 자신이 10번째로 작곡한 교향곡에 당당하게 9번 교향곡이라는 번호를 붙입니다. 그리고 이듬해 사망합니다.;;

이 곡은 말러 생전에 연주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항상 말러는 자신의 곡을 자신의 지휘로 초연하였지만 이 곡의 경우 초연을 직접 지휘하기는커녕 들어보지도 못한 채 1911년 5월 18일 사망하였습니다. 결국 말러 사후 6개월이 지난 1911년 11월 20일, 제자이자 친구였던 브루노 발터의 지휘로 초연이 이루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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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의 분석

악기구성: 피콜로, 플루트 3, 오보에 3, 클라리넷 3, Eb 클라리넷, 베이스 클라리넷, 바순 3, 호른 4, 트럼펫 3, 트롬본 3, 튜바, 팀파니, 큰북, 작은북, 심벌즈, 트라이앵글, 탬버린, 종금, 첼레스타, 하프 2, 만돌린, 현 5부
관현악법을 분석했을 때 독주 악기의 사용이 두드러지는 것이 큰 특징으로 이로 인해 실내악스러운 느낌이 강하게 듭니다. (특히 2악장과 6악장)
말러의 추종자였던 작곡가 쇤베르크는 이 곡을 아예 실내악으로 편곡하기까지 하였죠.

작곡가가 소심하게나마 교향곡이라고 적어놓았기 때문에 교향곡으로 보는 시각이 대다수이지만 소수의 사람들은 이 곡을 연가곡으로 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실제로 이 작품은 연가곡의 형식을 차용했기 때문에 전혀 일리가 없는 주장은 아닙니다.
기본적으로 이 곡은 연가곡처럼 가사의 내용이 어느 정도 연결되어 있으며, 4악장으로 이루어진 일반적인 교향곡들과 다르게 6악장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테너와 알토(혹은 바리톤)이 모든 악장에서 등장하여 노래를 부르고 6악장 혼자서 나머지 1~5악장 전부를 합친 길이를 가지고 있는 등 교향곡의 형식에서 벗어난 점이 많습니다.

 

당나라의 시인 '시선'(詩仙) 이백

 

이 곡은 두 명의 가수가 번갈아 가면서 노래를 부르는데 1,3,5악장은 테너가 부르고 2,4,6악장은 알토(혹은 바리톤) 부릅니다. 따라서 테너보다 알토가 이 작품에서의 비중이 훨씬 높습니다.
실제로 말러는 짝수 악장의 가수를 알토와 바리톤 사이에서 오랫동안 고민하였고 결국 알토를 선택했습니다. 하지만 악보에다 알토(혹은 바리톤)이라고 지정하여 알토를 우선으로 하지만 바리톤도 부를 수 있도록 여지를 두었습니다. 
실제 연주나 녹음을 보면 작곡가의 의도를 따라 알토가 부르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하지만 가사를 보면 화자가 남자기 때문에 바리톤이 더 합리적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아마 말러도 음악적인 효과 vs 가사의 내용 사이에서 상당히 고민하였을 것입니다.

곡의 가사의 경우 ‘일단은’ 중국의 한시들을 기초로 한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실제 가사는 중역에 중역을 거쳐서 원시들과는 그냥 스토리나 대충 일치하는 다른 작품이 된 수준으로 달라졌습니다.
번역이라는 게 기본적으로 원작과는 뉘앙스가 달라질 수밖에 없는 작업인데 이 ‘중국의 피리’라는 시집에 수록된 작품들은 중국어 원시를 직접 번역한 것도 아니고 이미 영어나 프랑스어 같은 다른 언어로 번역된 작품을 독일어로 한 번 더 번역한 것입니다... 거기에다 말러가 시에 음악을 입히면서 또 다시 가사의 수정이 많이 이루어졌습니다.
말러의 이 교향곡을 감상한 후에 한시 원문을 찾아서 읽어본다면 음악을 들었을 때와는 상당히 다른 느낌을 받을 것입니다.

대지의 노래 전곡- 지휘 사이먼 래틀, 알토 코제나, 테너 스켈튼, 바이에른 방송 교향악단 연주

 

 

 

제1악장. 현세의 고통에 대한 술 노래(Das Trinklied vom Jammer der Erde)

대지의 노래 1악장. 테너 킹, 바리톤 피셔 디스카우, 지휘 번스타인, 빈 필하모닉 연주(이하 동일)

3/4박자, a단조. 소나타 형식. 원시는 이백의 "비가행"(悲歌行)입니다.
호른의 호탕한 소리로 곡의 시작을 알립니다. 뒤이어 현악기가 합세하면서 광활한 벌판을 보는 듯한 장쾌한 음악이 흘러갑니다.
이후 곡은 다이나믹하게 진행되며 마지막 코다에서는 맨 앞에 나왔던 호른의 팡파르가 다시 울리고 뒤이어 둔하면서도 단호한 트롬본의 단말마로 마무리합니다.


제2악장. 가을에 고독한 자(Der Einsame im Herbst)

3/2박자, d단조. 원시는 확실히 알려지지 않았지만 음악학자 및 중국의 한시 전문가들, 그리고 말러리안들에 의하면 당나라의 시인 전기의 "효고추야장"(效古秋夜長)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30분짜리 6악장 다음으로 긴 악장으로 이 악장도 10분 가까이 하는 곡입니다.
이 곡의 제목은 ‘가을의 고독한 자’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이 음악은 벚꽃 핀 봄날 밤의 풍경과 가장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 


제3악장. 청춘에 대하여(Von der Jugend)

2/2박자, D장조. 원시는 이백의 시라고 하는데 어떤 작품인지는 추정이 불가능합니다. 검색을 해보면 이백의 "제원단구산거"(題元丹丘山居)로 추정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잘 모르겠습니다. 원시와 가사를 비교해보면 너무나도 차이가 많이 나는지라...
5음음계의 사용으로 동양적인 느낌을 물씬 풍기는 산뜻하고 짧은 악장입니다. 이 곡을 교향곡으로 본다면 스케르초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겠죠.


제4악장. 아름다움에 대하여(Von der Schönheit) 

3/4박자, G장조. 원시는 이백의 "채련곡"(採蓮曲)입니다.
풀피리 소리를 묘사한 플루트의 멜로디로 시작하는 곡입니다. 중간에는 분위기가 바뀌며 말을 타고 전속력으로 달리는 듯 휘몰아치는데 듣는 사람도 숨이 차는 긴박하고 변덕스러운 음악이 인상적입니다.


제5악장. 봄에 술 취한 자(Der Trunkene im Frühling) 

4/4박자, A장조. 원시는 이백의 "춘일취기언지"(春日醉起言志)입니다.
곡의 또 다른 스케르초 역할을 하는 악장이며 언뜻 듣기엔 이 곡 역시 밝고 유쾌한 곡이지만 앞선 곡들과는 다르게 조울증 느낌의 광기어린 유쾌함입니다. 가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제6악장. 고별(Der Abschied)

4/4박자, c단조~C장조. 원시는 맹호연의 "숙업사산방시정대부지"(宿業師山房時丁大不至)와 왕유의 "송별"(送別)입니다. 
형식은 일단은 소나타 형식이긴 한데 이 악장에서 형식을 찾는 것은 큰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무려 30분에 육박하는 악장으로 1~5악장의 길이를 합친 수준의 장대한 악장인 만큼 시 2개를 사용하였습니다.
저자 베트게는 이 두 시는 서로에게 주고받은 시라고 생각하였고(근거는 없습니다. 다만 왕유와 맹호연이 절친한 사이였던 것은 사실입니다.) 말러 역시 그 설정(?)에 맞추어 곡을 작곡하였습니다.
서로 관련 없는 두 시를 이 설정에 짜 맞추기 위하여 엄청난 개작이 들어간 건 물론입니다.
공의 깊고 무거운 울림이 두 번 울린 후 오보에가 쓸쓸하고 허무한 느낌이 드는 멜로디를 노래합니다. 이윽고 성악가가 ‘숙업사산방시정대부지’를 부르기 시작합니다. 
첫 번째 시를 다 부르고 나면 길고 장대한 간주가 폭풍처럼 몰아친 후에 ‘송별’을 이어 부릅니다.
마지막에는 장조로 전환되며 플루트, 하프, 첼레스타가 천상의 아름다움(동양식 표현으로는 ‘무릉도원’으로 표현할 수 있겠습니다.)을 묘사하는 가운데 독창자가 “영원히(Ewig)”를 끝없이 반복하며 서서히 소멸합니다.

 

가사 및 원작 한시: 링크 글로 대체합니다.

 

말러(1860-1911)/대지의 노래(The song of Earth)

구스타프 말러 대지의 노래 Gustav Mahler(1860-1911). Das Lied von der Erde (The song of Ear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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